[책마을] "기업의 주인은 주주도 이해관계자도 아닌 기업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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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란 무엇인가
신장섭 지음 / 북스코프
480쪽│2만2000원
신장섭 교수가 말하는 '기업의 본질'
법인은 껍데기 아닌 '사회적 실체'
신장섭 지음 / 북스코프
480쪽│2만2000원
신장섭 교수가 말하는 '기업의 본질'
법인은 껍데기 아닌 '사회적 실체'
‘자본주의’가 영화나 드라마라면 주인공은 누구일까. 대다수 경제학자는 ‘기업’이라고 답한다.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생산의 주체인 동시에 직원과 사회 구성원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소득분배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선 이견이 크지 않다. 하지만 ‘기업이 왜 만들어졌는지’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인가’로 질문을 바꾸면 돌아오는 답이 십인십색이다. 정치권과 경제계, 시민단체 등에서 기업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저자인 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는 기업에 대한 담론이 상식선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업이란 무엇인가》를 썼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면 갈등의 폭을 좁힐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책의 핵심은 ‘8대 기업명제’다. 저자가 명제를 제시한 것은 수학이나 논리학에서처럼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는 일반적인 진실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이를 바탕으로 논의를 이어가야 견해 차이가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첫 명제는 ‘주주는 주식의 주인일 뿐이며, 기업의 주인은 기업 자신’이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인 만큼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을 경영해야 하고, 그래야 기업이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내용을 담은 ‘주주가치론’과 사뭇 다른 주장이다. 기업의 주식을 자산으로 간주하는 금융권에서 주주가치론을 펴는 이들이 많다.
저자의 주장은 좌파 논객들이 자주 언급하는 ‘이해관계자론’과도 거리가 있다. 이해관계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주주뿐 아니라 종업원, 소비자, 지방자치단체 등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두루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경우가 많다.
저자가 제시한 대안은 ‘법인실체론’이다. 기업 법인은 껍데기가 아니라 ‘사회적 실체’이며 그 자체의 영속과 발전을 위해 자유로운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법인실체론을 인정하지 않으면 기업회계,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관계 등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법인실체론이란 개념을 이해하려면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을 설립할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투입한 자산의 소유권이 창업자 개인에서 법인으로 넘어간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이 과정을 거쳐 창업자가 주주로 신분이 바뀌어야 책임 범위를 줄일 수 있다. 설령 기업이 잘못되더라도 창업자라는 이유로 가욋돈을 물어내야 할 일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책임의 차단벽’은 법인에도 똑같이 작동한다. 대주주인 창업자가 다른 곳에서 큰 빚을 졌다고 해도 회사 자산을 압류할 수 없다. 은행이 선뜻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것도 이 같은 원칙이 지켜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같은 상황을 두 번째 명제인 “소유(법인)와 통제(주주와 전문경영인)의 근원적 분리”라는 말로 요약한다.
법인이 사회적 실체이며 주주를 기업의 주인으로 보기 힘들다는 주장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주주총회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상법을 보면 주주총회를 통해 실현되는 주주 권한은 의외로 많지 않다. 배당 규모는 이사회가 결정한 수준을 받아들일지만 판단하고, 투자 등 이사회가 제시한 주요 결정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 뒤집지도 못한다. 기업의 주인이 주주가 아니라 기업 자신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담론도 눈여겨볼 만하다. 저자가 제시한 일곱 번째 기업 명제는 ‘좋은 경영 성과를 내는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지배구조’다. 대주주의 지분이 많은지 적은지, 의결권을 금융투자자에게 얼마나 배분하는지 등은 법인이 자유롭게 정할 문제이며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고 단언하기 힘들다는 것이 의미다. 저자는 2%의 지분으로 총수가 기업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일본 도요타,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 대부분인 네덜란드 ING그룹 등을 사례로 들며 ‘좋은 지배구조’란 말 자체가 난센스라고 주장하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한국의 공정거래법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총수라는 자연인이 가지고 있는 주식에만 의미를 부여한다. “총수 한 사람이 2%밖에 안 되는 지분율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왜곡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는 성명이 수시로 나오는 배경이다. 저자는 법인이 가지고 있는 계열사의 지분도 자연인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과 다를 게 없으며 법인 지분을 감안하면 해당 기업의 지배구조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기업 존재론’과 ‘기업 목적론’ 등은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주제다. 저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상의 스타트업인 ‘내사랑이’를 내세운다. 창업자와 초기투자자 등이 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나가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기업 발달 단계에서 ‘법인실체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기업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선 이견이 크지 않다. 하지만 ‘기업이 왜 만들어졌는지’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인가’로 질문을 바꾸면 돌아오는 답이 십인십색이다. 정치권과 경제계, 시민단체 등에서 기업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저자인 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는 기업에 대한 담론이 상식선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업이란 무엇인가》를 썼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면 갈등의 폭을 좁힐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책의 핵심은 ‘8대 기업명제’다. 저자가 명제를 제시한 것은 수학이나 논리학에서처럼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는 일반적인 진실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이를 바탕으로 논의를 이어가야 견해 차이가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첫 명제는 ‘주주는 주식의 주인일 뿐이며, 기업의 주인은 기업 자신’이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인 만큼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을 경영해야 하고, 그래야 기업이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내용을 담은 ‘주주가치론’과 사뭇 다른 주장이다. 기업의 주식을 자산으로 간주하는 금융권에서 주주가치론을 펴는 이들이 많다.
저자의 주장은 좌파 논객들이 자주 언급하는 ‘이해관계자론’과도 거리가 있다. 이해관계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주주뿐 아니라 종업원, 소비자, 지방자치단체 등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두루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경우가 많다.
저자가 제시한 대안은 ‘법인실체론’이다. 기업 법인은 껍데기가 아니라 ‘사회적 실체’이며 그 자체의 영속과 발전을 위해 자유로운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법인실체론을 인정하지 않으면 기업회계,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관계 등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법인실체론이란 개념을 이해하려면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을 설립할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투입한 자산의 소유권이 창업자 개인에서 법인으로 넘어간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이 과정을 거쳐 창업자가 주주로 신분이 바뀌어야 책임 범위를 줄일 수 있다. 설령 기업이 잘못되더라도 창업자라는 이유로 가욋돈을 물어내야 할 일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책임의 차단벽’은 법인에도 똑같이 작동한다. 대주주인 창업자가 다른 곳에서 큰 빚을 졌다고 해도 회사 자산을 압류할 수 없다. 은행이 선뜻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것도 이 같은 원칙이 지켜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같은 상황을 두 번째 명제인 “소유(법인)와 통제(주주와 전문경영인)의 근원적 분리”라는 말로 요약한다.
법인이 사회적 실체이며 주주를 기업의 주인으로 보기 힘들다는 주장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주주총회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상법을 보면 주주총회를 통해 실현되는 주주 권한은 의외로 많지 않다. 배당 규모는 이사회가 결정한 수준을 받아들일지만 판단하고, 투자 등 이사회가 제시한 주요 결정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 뒤집지도 못한다. 기업의 주인이 주주가 아니라 기업 자신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담론도 눈여겨볼 만하다. 저자가 제시한 일곱 번째 기업 명제는 ‘좋은 경영 성과를 내는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지배구조’다. 대주주의 지분이 많은지 적은지, 의결권을 금융투자자에게 얼마나 배분하는지 등은 법인이 자유롭게 정할 문제이며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고 단언하기 힘들다는 것이 의미다. 저자는 2%의 지분으로 총수가 기업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일본 도요타,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 대부분인 네덜란드 ING그룹 등을 사례로 들며 ‘좋은 지배구조’란 말 자체가 난센스라고 주장하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한국의 공정거래법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총수라는 자연인이 가지고 있는 주식에만 의미를 부여한다. “총수 한 사람이 2%밖에 안 되는 지분율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왜곡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는 성명이 수시로 나오는 배경이다. 저자는 법인이 가지고 있는 계열사의 지분도 자연인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과 다를 게 없으며 법인 지분을 감안하면 해당 기업의 지배구조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기업 존재론’과 ‘기업 목적론’ 등은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주제다. 저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상의 스타트업인 ‘내사랑이’를 내세운다. 창업자와 초기투자자 등이 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나가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기업 발달 단계에서 ‘법인실체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