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고 평가받는 미국 정부의 제재 가운데 하나로 지난 5월 발표한 ‘미국의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EDA)를 쓰려면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치가 꼽힌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를 규제하기 시작한 이후 갈수록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화웨이는 핵심 반도체 조달에서 설계는 자회사 하이실리콘에, 생산은 대만의 TSMC에 맡겨 미국의 제재를 피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하이실리콘도 반도체를 설계할 때 쓰는 도구인 EDA는 미국 회사 제품을 써왔다는 데 있다. 화웨이는 결국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고 강조해온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기린’의 차세대 모델 개발을 중단하기로 했다.

중국 경제매체인 제일재경은 3일 베이징 컨설팅업체 CCID의 보고서를 인용해 “중국의 글로벌 EDA 시장점유율은 0.6%에 불과하다”며 “반도체 인력 육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인 EDA는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분야로 꼽힌다. 복잡한 설계도를 그리는 것은 물론 재료 가공, 열·화학 처리 등 공정까지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CCID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EDA 시장 규모는 102억5000만달러(약 12조2000억원)로 전년보다 5.8% 커졌다. 이 시장을 미국의 3대 업체인 시놉시스(점유율 32.9%), 케이든스(22.9%), 멘토(10.2%) 등이 과점하고 있다.

반도체산업은 매년 수조원대 투자를 선제적으로 집행해야 하고, 설계는 대규모 투자 이전에 끝내야 한다. 이런 특성상 반도체 기업들은 신뢰도가 높은 EDA를 선택하려고 한다. 삼성전자도 미국 회사의 EDA를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미국 업체들이 85%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고 CCID는 추산했다. 중국의 EDA 시장은 지난해 5억8000만달러에 달했다. 이 가운데 토종 중국 기업이 올린 매출은 6000만달러에 그쳤다.

제일재경은 중국이 미국의 제재 이후 반도체 기술과 인력 육성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집적회로산업인재백서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반도체 인력 수요는 72만 명인데 자국 내 공급은 40만 명 수준에 그친다. 중국 내 EDA 개발자는 15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미국 등 외국계 기업 종사자를 빼면 500여 명 수준이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