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의 잘못된 정보공개에 주위 비난까지…'음성판정' 가족도 감염자 취급
"코로나19보다 주위 시선이 더 무서워"…"주홍글씨 되지 않게 해달라"
"교회도, 집회도 안 갔는데…" 한순간 확진에 고통받는 일가족
그날이 오기 전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그저 남의 일이었다.

지난달 21일 평소와 다를 바 없던 아침을 보내고 운동을 나간 이모(49·여) 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전화 화면엔 아들의 번호가 찍혀 있었다.

다급한 목소리의 아들은 "아빠가 코로나19에 걸렸다"며 이씨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했다.

◇ 날벼락 같은 남편 확진 소식…자가 격리 들어간 모자

이씨는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코로나19에 감염될 만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씨에 따르면 인천에 거주하는 이씨 가족 모두 집단 감염이 발생한 교회나 서울 광화문 집회와는 전혀 무관했고, 확진자와 접촉한 적도 없었다.

평소 마스크도 철저히 착용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머릿속이 새하얀 가운데 이씨는 남편 확진 소식을 알린 관할 보건소에 수차례 전화를 걸었다.

곧 앰뷸런스를 보낼 테니 당장 병원에 입고 갈 옷가지만 챙기면 된다고 했다.

남편이 만지거나 입은 소지품과 옷은 모두 폐기 처분해야 한다는 당부도 있었다.

남편이 병원으로 이송된 뒤 이씨와 아들도 당일 자택에서 바로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다행히 이씨 모자는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왔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진자 가족이라는 꼬리표는 생각보다 무서웠다.

남편이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과 사흘간의 이동 경로가 관할 기초자치단체 홈페이지에 게시되자 직장과 지인들로부터 전화가 쏟아졌다.

이씨는 3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남편이 병원으로 이송된 날 4시간 넘게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며 "심지어 전혀 모르는 사람이 확진 사실이 맞느냐며 연락을 해와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따져 묻고 끊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방역당국은 이씨 남편의 감염에 대해 "구체적인 감염경로가 파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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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시학원, 음성판정 고3 아들에 "환불해줄테니 학원 나오지 마라"

심지어 방역 당국이 공개한 확진자 정보가 실제와 다르게 올라오면서 이씨 가족은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씨 남편은 확진 이틀 전인 지난달 19일에도 별다른 증상이 없었지만, 그날 저녁부터 고열, 기침, 두통 증상을 보였다는 잘못된 정보가 공개된 것이다.

이 같은 정보를 담은 이미지가 언론 보도를 통해 나가자 '증상이 있는데도 출근했느냐', '제정신이냐'는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씨는 "남편은 20일 퇴근 뒤 약간 으슬으슬한 증상이 있어서 몸살약을 받으려고 병원에 들렀다가 열이 37.7도로 나와 검사를 받았다"며 "다음 날은 몸이 좋지 않아 아예 출근하지 않고 세 가족이 각자 다른 공간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 검사한 병원에서도 남편이 이렇게 진술한 사실을 확인해줘 바로 보건소에 잘못된 사실을 정정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결국 보건소 측이 실수를 인정하고 정보도 수정됐지만 이미 발생한 피해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1주일이 흘러 상황이 어느 정도 잠잠해질 때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3 아들이 다니던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원장은 '음성 판정이 나왔지만 다른 학부모와 원생들이 불안해할 수 있다'며 '원비를 모두 환불해 줄 테니 격리가 끝난 뒤에도 학원에 나오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대입을 앞두고 예체능 실기를 준비 중인 이씨 아들에겐 큰 타격이었다.

자택 자가 격리로 연습조차 어려운 데다 새로운 학원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씨는 "이제 얼마 남지도 않은 입시생을 어떤 강사가 책임감 가지고 마음 써주며 가르치겠느냐"며 "학원 입장도 물론 이해가 가지만 격리 후 음성 판정이 나와도 보내지 말아 달라는 말에는 속상함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회도, 집회도 안 갔는데…" 한순간 확진에 고통받는 일가족
◇ "확진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바꿔달라"

이씨는 코로나19 확진이 '주홍글씨'가 되지 않도록 사회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코로나19에 대해 사람들이 감염보다 주위 비난을 더욱 두려워한다는 것은 설문 조사 결과로도 입증된 바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올해 1월 전국 1천명을 긴급 설문한 결과 '내가 확진자가 됐을 때 주변으로부터 비난, 추가 피해를 받는 것이 두렵다'는 응답이 평균 3.52점(5점 기준)으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무증상 감염되는 것'(3.17점), '주변에 증상이 의심되는데도 자가신고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두렵다'(3.10점) 순이었다.

이씨는 "남편이 역학 조사 때 최선을 다해 답했으나 되려 잘못된 정보가 공개돼 이후 모든 질타를 받았다"며 "그땐 사람들이 왜 말을 안 하고 행적을 숨기려 하는지 알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음성이 나오고 격리가 끝난 뒤에도 사회에서 배척받아 정신 상담을 받는 사례도 너무 많다고 들었다"며 "이 많은 확진자를 모두 배제하고 살 게 아니라면 이제 인식을 바꿀 때가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