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제국 유지하기 위한 법전…사유재산 보호로 상업·무역의 발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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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길라잡이
최승노의 스마트 경제 읽기
(1) 함무라비 법전으로 본 상업의 탄생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최승노의 스마트 경제 읽기
(1) 함무라비 법전으로 본 상업의 탄생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는 기원전 18세기, 즉 지금으로부터 약 3800년 전에 살았던 바빌로니아의 왕이다. 바빌로니아는 오늘날 이란, 이라크 지역에 위치했는데 그는 여기에서 강력하고 중앙집권적인 제국을 만들었다. 가도와 운하를 정비하고 수도 바빌론을 중심으로 달력, 언어, 종교를 통일하는 등 거대한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함무라비가 현대인들에게 친숙한 것은 그의 제국보다는 그가 남긴 법전 덕분이다.
함무라비 법전에 있는 42조와 48조를 보면, “사람이 농지를 빌렸을 땐 설사 이를 경작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대를 납부해야 한다. 단 수재나 한재를 당한 경우에는 그렇지 아니하다.” 또 53조에는 “사람이 둑의 보수를 게을리해 둑이 터져 타인의 농지, 과수원, 목장이 침수됐다면 그는 타인의 망가진 곡물 등에 대해 변상해야 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법전 편찬은 문명 활동의 바로미터다. 사람들이 무리지어 살면서 생기는 갈등을 조정하려면 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만한 규칙이 필요하다. 그 규칙이 바로 법이고, 여러 법과 판례를 한데 묶으면 법전이 되는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 역시 282개 조항이 모두 판례 사안인 판례법전이다.
법에는 민법, 형법, 상법, 소송법 등 여러 분야가 있다. 이 중 상거래를 규정하는 상법만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분야는 또 없다. 형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한두 개의 강력한 규정만으로도 많은 문제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지만, 상법은 아무리 초기 문명사회라고 해도 그렇게 단순해선 곤란하다. 함무라비 법전의 절반가량이 경제 관련 조항인 것은 그래서 놀랄 일이 아니다. 시장에선 대개 큰돈이 오가는 만큼 일반 민사 분쟁에 비해 훨씬 정교한 갈등 조정 기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바빌로니아에서 재산권의 보호는 단지 소유권의 귀속을 따지는 수준을 넘어 임대차에 따르는 재산상의 이익을 규정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농지를 임차했을 땐 설사 경작하지 않더라도 지대가 발생한다고 본 것이나 배를 빌리고 난 뒤에 요율을 규정한 조항이 그렇다.
사유재산을 중시하는 건 고대 문명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함무라비 법전의 영향을 받은 로마의 12표법은 채권·채무, 상속, 재산권, 부동산 등의 규정이 상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고조선의 8조법에도 사유재산제가 규정돼 있는데 ‘타인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는다. 단 변상하려는 자는 50만 전을 내야 한다’는 조항이 그렇다. 고조선에 뒤이은 부여에선 1책 12법이라고 하여 훔친 물건 값의 열두 배를 변상하게 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살펴본 열 배 변상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바빌로니아와 고조선은 둘 다 신화시대와 역사시대가 중첩될 만큼 오래된 나라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법에 사유재산 제도가 기록돼 있다는 건 경제적 풍요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그만큼 뿌리 깊다는 방증이다. 문명과 법률, 상거래와 사유재산은 무엇이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
문명의 발달은 법률을 정비할 필요성을 낳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법전은 상업의 발달과 궤를 같이했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법이 더 정교해졌고, 그런 법 집행은 다시 상업의 발달을 촉진했다. 멀게는 로마가 남긴 12표법에서 가깝게는 고조선의 8조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쳤다. 함무라비 법전을 통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경쟁관계에 있던 이집트 문명에 비해 상업과 교역이 훨씬 더 활발한 보다 개방된 사회구조를 형성할 수 있었다.
함무라비 법전의 절반은 경제 관련 조항
그의 법전은 전체 282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가족, 군사, 노예, 농업, 범죄, 상거래, 상속, 재판, 주택, 직업, 혼인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고대의 법전 치고는 드물게 상거래 조항이 상세하고 진보적이었다는 것이다. 넓게 보면 경제와 관련된 조항이 전체 법전의 절반에 육박한다.함무라비 법전에 있는 42조와 48조를 보면, “사람이 농지를 빌렸을 땐 설사 이를 경작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대를 납부해야 한다. 단 수재나 한재를 당한 경우에는 그렇지 아니하다.” 또 53조에는 “사람이 둑의 보수를 게을리해 둑이 터져 타인의 농지, 과수원, 목장이 침수됐다면 그는 타인의 망가진 곡물 등에 대해 변상해야 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법전 편찬은 문명 활동의 바로미터다. 사람들이 무리지어 살면서 생기는 갈등을 조정하려면 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만한 규칙이 필요하다. 그 규칙이 바로 법이고, 여러 법과 판례를 한데 묶으면 법전이 되는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 역시 282개 조항이 모두 판례 사안인 판례법전이다.
법에는 민법, 형법, 상법, 소송법 등 여러 분야가 있다. 이 중 상거래를 규정하는 상법만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분야는 또 없다. 형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한두 개의 강력한 규정만으로도 많은 문제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지만, 상법은 아무리 초기 문명사회라고 해도 그렇게 단순해선 곤란하다. 함무라비 법전의 절반가량이 경제 관련 조항인 것은 그래서 놀랄 일이 아니다. 시장에선 대개 큰돈이 오가는 만큼 일반 민사 분쟁에 비해 훨씬 정교한 갈등 조정 기법이 필요하다.
법률, 사유재산 그리고 상업의 탄생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경제와 관련된 거의 모든 조항에서 사유재산 개념이 전제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인의 재산을 훔쳤을 때 그 값의 열 배를 변상해야 한다는 것이나 빌린 소가 죽으면 그 소에 상당하는 소로 변상해야 한다는 조항이 그것이다.하지만 바빌로니아에서 재산권의 보호는 단지 소유권의 귀속을 따지는 수준을 넘어 임대차에 따르는 재산상의 이익을 규정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농지를 임차했을 땐 설사 경작하지 않더라도 지대가 발생한다고 본 것이나 배를 빌리고 난 뒤에 요율을 규정한 조항이 그렇다.
사유재산을 중시하는 건 고대 문명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함무라비 법전의 영향을 받은 로마의 12표법은 채권·채무, 상속, 재산권, 부동산 등의 규정이 상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고조선의 8조법에도 사유재산제가 규정돼 있는데 ‘타인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는다. 단 변상하려는 자는 50만 전을 내야 한다’는 조항이 그렇다. 고조선에 뒤이은 부여에선 1책 12법이라고 하여 훔친 물건 값의 열두 배를 변상하게 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살펴본 열 배 변상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바빌로니아와 고조선은 둘 다 신화시대와 역사시대가 중첩될 만큼 오래된 나라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법에 사유재산 제도가 기록돼 있다는 건 경제적 풍요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그만큼 뿌리 깊다는 방증이다. 문명과 법률, 상거래와 사유재산은 무엇이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
문명의 발달은 법률을 정비할 필요성을 낳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법전은 상업의 발달과 궤를 같이했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법이 더 정교해졌고, 그런 법 집행은 다시 상업의 발달을 촉진했다. 멀게는 로마가 남긴 12표법에서 가깝게는 고조선의 8조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쳤다. 함무라비 법전을 통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경쟁관계에 있던 이집트 문명에 비해 상업과 교역이 훨씬 더 활발한 보다 개방된 사회구조를 형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