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째 대구 남도초교 앞 사거리 지키는 권구창씨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숨은 봉사에 주민센터도 "금시초문"

'휙 휘르르~ 휙' 경쾌한 호루라기 소리에 초록빛 보행자 신호에도 꿈쩍 않던 아이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파이팅하세요"
[#나눔동행]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곳엔 등굣길 수호천사가 있다
힘찬 수신호로 차를 세운 50대 후반 남성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들 인사에 입꼬리가 가득 올라간 아빠 미소로 답했다.

대구 남구 대명동 남도초등학교 앞 사거리에 아침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저 사람은 누굴까.

정갈한 제복 차림에 아이들과 살가운 모습이 출근길 운전자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경찰관은 아닌 것 같은데 몇 년째 그곳을 지날 때마다 본다'는 제보를 받고 구청에 문의했지만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주민센터에서조차 "그런 사람도 있어요?"라고 되물었다.

결국 등교 시간을 기다려 쑥스러워하는 그에게 말을 걸고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다부진 체격으로 14년째 남도초교 등굣길 안전을 책임지는 이 남성은 학교 앞 꿈키움태권도파크을 운영하는 권구창 관장이다.

그는 평일이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전 8시부터 학교 앞 사거리에서 교통봉사를 한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산을 받쳐 들고나온다.

인터뷰 요청에 "알려지는 게 부담스럽다"며 머뭇거린 권 관장은 "딸아이가 5학년이 됐을 때 학교에 도움이 되는 것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나눔동행]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곳엔 등굣길 수호천사가 있다
그는 "그저 전교생이 알아봐 주며 인사하고 학부모들이 고맙다는 말을 건넬 때 보람을 느낀다"며 "이제는 이 일이 내 삶에 활력소가 됐다"고 밝게 웃었다.

대명동에서 27년째 자율방범대 활동도 해왔지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소리 없이 봉사하는 삶을 이어왔다.

권 관장은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아이들의 안전한 등굣길을 지키다 보니 이제는 일과가 됐다"고 했다.

이어 "40분 남짓 봉사를 하고 나면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며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남도초교는 그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상'으로 보답했다.

교육청도 감사패를 전했다.

[#나눔동행]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곳엔 등굣길 수호천사가 있다
그가 교통봉사에 나서는 현장 모습은 처음 시작할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홀로 차를 통제하던 그의 곁에는 시니어봉사단 등 다른 봉사단체가 함께할 때가 많다.

많은 이들이 동참해 등굣길 안전이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 운전자와 학부모·학생이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한다.

그는 "교통봉사 중에도 아이들에게 사고가 나는 것을 서너차례 봤다"며 "아이들은 언제든 뛸 수가 있기에 학교 앞에서는 꼭 서행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나눔동행]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곳엔 등굣길 수호천사가 있다
그러면서 "여기서는 신호가 바뀌어도 제가 호루라기를 불어야 아이들이 건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횡단보도에서 절대 뛰지 말라고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당부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