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는 상장사가 급증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경영난이 심화한 경기 민감 업종과 비우량 기업의 유동성 압박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의 지난달 유상증자 결정 공시 건수는 모두 102건(종속회사 공시 포함)에 달했다. 전달 64건, 작년 같은 기간 54건과 비교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실적 악화로 고전하는 항공과 자동차 부품, 패션, 도·소매 등 경기 민감 업종 기업들이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해 현금 확보를 서두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항공사인 진에어(1092억원)와 자동차 내장재업체 케이엔더블유(207억원), 패션업체 비비안(430억원), 닭고기 유통업체 마니커(219억원) 등이 운영자금 조달 목적의 신주 발행 계획을 알렸다.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중견기업 중 상당수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유동성 압박이 심화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케이엔더블유는 증권신고서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완성차업체 공장 셧다운(가동 중단) 등의 여파로 자금 유동성이 악화됐다”고 전했다. 닭고기업체 마니커도 “코로나19로 인한 금융시장 경색에 대비해 한도대출을 확대하며 대응했다”고 최근 차입금 증가 배경을 밝히면서 “육계 판매단가 하락이 지속되면서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3%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해외 사업 부진도 자금 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18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 중인 카메라 렌즈 전문업체인 코렌은 “필리핀 법인이 현재까지 셧다운을 지속해 스마트폰 렌즈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신규 거래처 확보를 위한 해외 납품 타진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부진한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경영난 등으로 비교적 낮은 신용등급을 받은 탓에 빚을 늘리기 힘든 대기업그룹 계열사도 유상증자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달 물류업체 한진(1045억원)에 이어 이달엔 두산중공업(1조3000억원), 두산퓨얼셀(3420억원)이 대규모 자금조달 계획을 발표했다. 한진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우려와 이에 따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예상해 선제적 자금조달 목적으로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규모 증자나 회사채 발행이 여의치 않은 중소기업들은 앞으로 자금 사정이 더욱 악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1650개 서비스·건설업 자금사정지수(SBHI)는 9월 전망치 기준 57.7로 나타났다. 100 이상이면 호전, 미만이면 악화를 의미하는 이 지표는 지난달 66.4, 1년 전 9월에는 79.1이었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본부장은 “단기차입금으로 자금 부족을 견디던 코로나19 피해 기업 중 적잖은 수가 한계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며 “더 많은 상장기업이 경영권 지분의 희석 부담에도 불구하고 증자 추진 결단을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