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으로 포장된 네이버의 문어발식 확장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네이버를 어떤 산업군에 넣어야할 지는 앞으로도 끊임없는 논쟁 거리일 게 분명하다. 네이버는 스스로를 IT 플랫폼 기업이라고 주장한다. 협회로는 인터넷기업협회에 속해 있다. 타칭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요즘 금융권에선 네이버를 ‘빅테크 금융사’ 혹은 ‘테크핀(techfin)’이라고 부른다. 소매유통업계에서 네이버는 이미 ‘유통 공룡’이다. 네이버 쇼핑은 전체 온라인 쇼핑몰 중 거래액 규모로 1위로 추정된다(네이버를 비롯해 온라인 쇼핑몰들은 자사 전체 거래액을 공개하지 않는다). 온라인 부동산 중개 시장에서도 네이버 부동산은 직방 등을 단연 앞선다.

자칭과 타칭의 이 같은 온도차는 네이버의 무한 확장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외부의 시각에서 볼 때 네이버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는 기업이다. 네이버가 언론사들의 뉴스를 자사 검색창의 ‘킬러 콘텐츠’로 흡수할 때 기존 언론사들은 네이버를 문화체육관광부 관할로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이버는 사실상 언론이었다. 네이버가 전가의 보도로 활용하는 네이버 자체의 인공지능(AI) 시스템으로 뉴스를 선별하며, 뉴스 클릭으로 발생하는 트래픽을 각 언론사에 넘겨주는 식으로 타협을 보긴 했으나 네이버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뉴스 공급처다.
혁신으로 포장된 네이버의 문어발식 확장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네이버의 무한 확장은 과거 재벌들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물론 차이점도 뚜렷하다. 우선 동기부터 달랐다. 과거 재벌들은 시쳇말로 자녀나 친인척들의 노후를 위해 문어발 수를 늘렸다. 네이버는 적어도 소비자 편익을 위해서, 구글 등 해외 검색 골리앗으로부터 국내 시장을 방어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정도는 된다. 더 중요한 차이는 사업 확장의 방식이다. 재벌들은 주로 금권(金權)을 행사했다. 본업을 통해 벌어들인 막강한 자본력을 내세워 새로운 시장에서도 영역을 넓혔다. 그래서 대기업의 외연 확장은 늘 규제의 대상이 됐다. 이와 달리, 네이버는 데이터 권력을 통해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외부의 시선에서 네이버의 방식은 훨씬 세련되고, 영리하다.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유명 성장전략 컨설턴트인 토드 휴린은 어떤 기업이 시장을 평정하는가, 다시 말해 승자독식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영구적 알고리즘 우위’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어떤 산업 분야에서든 가장 많은 데이터를 수집, 관리, 분석, 체계화하는 회사가 AI와 머신러닝이라는 무기까지 갖춘다면 오랫동안 경쟁 우위를 차지한다는 논리다. 휴린은 한 산업군 내에서 승자독식의 원리를 말했지만, 데이터 권력은 다른 산업으로의 확장과 관련해서도 설명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튜브가 소매 유통 시장에 진출하는 건 사실 시간의 문제다. 그 많은 유저를 확보한 이상, 유뷰브는 광고 플랫폼 그 이상으로 진화할 것이다.

네이버는 정확히 휴린이 설명한 공식을 따라 검색 시장 독점에 성공했고, 다른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 중이다. 경쟁사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신속하게 수집하기 위해 선제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AI 등 기계 시스템을 활용해 산업 전반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치 있는 통찰력을 습득했으며, 이제 고객들이 그 통찰력을 얻는 대가로 지갑을 기꺼이 열도록 하고 있다. 얼마 전 네이버가 장보기 서비스를 선보인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관련해 한 언론사가 네이버와 가진 인터뷰엔 이런 인용이 등장한다. “네이버 이용자들이 검색창에 입력하는 검색어의 최근 패턴을 분석해보니 신선식품 장보기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코로나19 시대 소비자의 소비 성향을 네이버는 누구보다 잘 파악했고, 이를 사업으로 엮었다는 얘기다.

혁신으로 포장된 네이버의 문어발식 확장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네이버의 무한 확장을 어떤 잣대로 판단할 지는 매우 논쟁적인 주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19일 네이버의 독점력 전이(轉移)에 관한 전원회의를 열고 부동산, 쇼핑 등으로의 영역 확대에 대해 판단을 내린 것은 이런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공정위는 최근 부동산 부문에 관한 결론을 내리며 부동산 중계 업체와의 불공정계약을 이유로 네이버에 과징금 10억원을 부과했다. 당초 쇼핑과 관련한 독점력 전이 이슈도 부동산과 함께 결론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공정위가 분리 발표로 방향을 바꾼터라 쇼핑에 관한 제재 수위가 어느 정도일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네이버의 무한 확장은 규제 당국으로서도 골치 아픈 사안이다. 기존 전통 기업과의 차별성 문제가 불거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권만 해도 네이버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기존 금융 질서를 송두리째 흔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네이버페이를 활용해 후불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하고 있으니 사실상 신용카드 회사랑 뭐가 다른냐는 불만이다. 네이버 파이낸셜은 미래에셋증권과 제휴해 우회적으로 수신 기능까지 갖췄다. 보험 상품 비교 서비스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금융 회사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지자 금융위원회는 오는 10일 디지털 금융과 관련해 1차 끝장 토론을 시작할 예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네이버가 카카오처럼 은행업을 한다고 하면 은행업법에 따라 관리 감독을 하면 되겠지만 네이버는 계속 우회로를 만들어 사실상 금융업을 하려고 한다”

산업자원부 입장에서도 네이버를 유통산업발전법으로 관할해야 할 지 애매하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대형 마트는 주 2회 주말에 의무적으로 영업을 하지 못한다. 골목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최근 올라온 개정안에 따르면 백화점, 쇼핑몰 등도 영업제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산자부나 농림수산식품부 등 관할 부처들은 시도 때도 없이 ‘창구 지도’를 시행한다. 농산물 가격이 뛰면 농식품부가 대형 마트에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고 공문을 보내는 식이다. 하다못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백화점이 입점업체들과 함께 대규모 할인 행사를 기획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공정위가 내세우는 명분은 갑질을 원천 차단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네이버 쇼핑은 사실상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공정위가 온라인 플랫폼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는 건 이런 형평성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네이버에 대한 공정위의 규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분명히 존재한다. 네이버는 기존 전통 기업들이 보지 못했던, 그래서 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장과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으로 포장된 이 같은 네이버의 선물에 소비자들은 기꺼이 돈을 낸다.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다음의 이재웅님은 도대체 뭘 한건가. 카카오는 다음과 합병한 뒤에도 왜 네이버의 독주를 못 막는 것인가. 검색 시장에서 최소한 양강 구도라도 형성됐으면 네이버도 ‘독점력 전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혐의를 받지는 않았을텐데 말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