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격된 질병관리청 초대 청장에 정은경… K방역 이끈 '영웅'
문재인 대통령이 초대 질병관리청장으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55·사진)을 임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통제할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쟁 중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오랜 격언을 따른 인사라는 평가다. 질병관리청은 오는 12일 공식 출범한다.

‘코로나 전쟁’ 적임자

전남여고, 서울대 의대를 나온 정 청장은 1995년 국립보건원(현 질병관리본부) 보건연구관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에서 수련받고 전문의가 된 정 청장은 대학병원에 남아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사 대신 보건의료 제도를 바꾸는 행정가의 길을 택했다.

한 의대 교수는 “서울대 의대 83학번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보건소에서 근무를 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며 “대학병원에 남아 임상 교수로 성장하는 길 대신 지역사회 주민의 건강 수준을 높이는 길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정 청장이 이름을 알린 것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다. 당시 정 청장은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으로 현장점검반 반장을 맡아 메르스 브리핑을 하며 국민 앞에 섰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에 대한 국민 여론이 나빠지면서 양병국 전 질병관리본부장 등 의사 출신 공무원과 함께 징계를 받았다.

정 청장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2017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그해 7월 당시 국장급이던 정 청장을 차관급인 질병관리본부 수장으로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했다. 올 들어 코로나19 유행이 심각해진 뒤 문 대통령은 직접 정 청장을 가리켜 “내가 뽑은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뢰를 보였다.

근면·성실의 아이콘

코로나19는 정 청장을 ‘국민 영웅’ 자리에 오르게 했다. 정 청장은 국내 코로나19가 확산하던 1월 30일 이후 2월 28일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이 투입되기까지 한 달 가까이 매일 브리핑을 했다.

염색할 시간도 없어 하루가 다르게 흰머리가 늘던 정 청장의 모습은 국내 코로나19 대응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도시락을 먹고 매일 한 시간도 못 자겠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 시간은 잔다”고 한 그의 답변도 화제가 됐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쪼개 정 청장은 직원들과 함께 세계에 코로나19 대응 상황을 알리는 논문도 썼다. 4월에는 구로 콜센터 논문을 통해 “코로나19 유행을 막기 위해 방역당국이 바이러스 노출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을 스크리닝해야 한다”고 알렸다. 7월에는 신천지발 집단감염 이전 국내 코로나19 상황을 분석해 “가정 내에서도 접촉자를 관리해야 하고 요양시설 등 고위험군 관리에 신경써야 한다”고 발표했다.

정 청장이 국내 코로나19 대응의 상징이 되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는 “코로나19는 정 청장이 조장인 5000만 명의 조별과제”라는 유행어가 돌 정도다. 단체행동이 중요한 조별과제처럼 전 국민의 단합된 마음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정 청장이 국내 코로나19 브리핑에서 가장 많이 얘기한 것도 ‘국민들의 방역 참여’다.

의료계 “정 청장, 당연한 인사”

의료계에서는 정 청장 인사에 대해 ‘당연한 결과’라고 평했다.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은 “정부는 물론 의료계에도 초대 청장으로 정은경 청장만 한 사람이 없다”며 “성격이 꼼꼼해 상당히 디테일한 내용까지 모두 챙기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2016년 2월부터 정은경 청장이 본부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2017년 7월까지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냈다. 정 교수가 본부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정 청장은 긴급상황센터장이었다.

“2016년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비상이 걸렸을 때예요.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주말에도 매일 회의를 했는데 국장 직책이던 정 청장이 자발적으로 주말 회의에 참석했던 기억이 납니다. 실력을 갖춘 것은 물론 꾸준함과 성실성으로도 유명한 직원이었죠.” 정 교수의 말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