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종(種) 다양성 필요한 거대 여당
생물 종(種)의 존속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종의 다양성이다. 가축 전염병이 치명적인 것은 개체 수가 아무리 많아도 DNA상 단일 종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조류인플루엔자를 옮기는 야생 철새는 별 탈 없어도 사육되는 수만 마리 닭에겐 위험한 이유다. 인간 사회도 예외일 수 없다. 수많은 이들이 똑같은 사고에 갇히면 전체주의로 치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최대 맹점은 176석의 일사불란함이 아닐까 싶다. 역대 여당에는 정풍(整風)운동,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처럼 쇄신 목소리를 내는 소장파가 존재했다. 주류가 있으면 비주류가 있고, 그 안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은 언로가 막히고, 토론이 사라진 채 제창 소리만 들린다. 지난해 조국 사태부터 윤미향 사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의혹 등 국민에게 머리 숙여야 할 때 되레 결사옹위 경쟁을 벌인다. 이해찬 전 대표의 잇단 함구령에 모두 합죽이가 되거나, 골수 친문세력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다.

거대 여당에 ‘딴 목소리’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조금박해(趙琴朴海)’라는 소수가 간간이 쓴소리를 냈다. “말로는 민생 외치면서 몸은 과거사와 검찰에 집중한다”고 한 조응천 의원, 공수처법안 표결 때 홀로 반대표를 던졌다가 징계받은 금태섭 전 의원, “당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나 싶다”던 박용진 의원, “우리도 틀릴 수 있다”는 퇴임사를 남긴 김해영 전 최고위원이 그들이다. 하지만 ‘조금박해’도 쓴소리하다 지친 듯하고, 그나마 둘(금태섭 김해영)은 원외여서 희미해져 간다.

합리적 비판과 이견을 비난과 공격으로 받아들일수록 여당은 국민 눈높이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행태를 보면 황당하다 못해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국회의원의 청탁을 김치찌개 재촉하는 것에 비유한 3선 의원, 팩트조차 자주 틀려 ‘자살골로 해트트릭’을 올린 초선 의원, “카카오 들어오라고 하세요”라는 청와대 수석 출신 의원…. 조국 전 장관이 ‘초(超)엘리트’여서 그럴 수 있다는 둥, 여권이 구설에 오를 때 꼭 끼는 전직 의원도 있다.

이럴 때마다 상식을 가진 국민들은 분노 게이지가 치솟는다. 그렇게 3년여를 겪다 보니 모멸감, 자괴감을 넘어 헛웃음이 난다는 반응이다. 더 큰 문제는 여당의 획일성이 말에 그치지 않고, 경제정책과 입법으로 현실화한다는 점이다.

여당의 사전에는 시장은 ‘누를 대상’, 기업은 ‘때릴 대상’, 혁신은 ‘그런 척 할 대상’으로 정의된 듯하다. 그러니 경제 위기라면서 기업 규제를 산더미처럼 만들고도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부동산 대책의 획일적 편협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민주당은) 집의 하자를 찾는 데는 능하지만 집을 지을 줄은 모른다”는 세간의 평가를 부인할 수 있겠나.

매사를 이분법과 제로섬으로 보는 민주당식 사고는 문제 접근 방식도 극히 편협하다. 시장이라는 ‘개방계’를 이해 못하고 ‘폐쇄계’로만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의 땅 부족을 푸는 해법을 찾을 때 개방계적 사고라면 위로 올리고 아래로 파는 수직적 확장이 당연하다. 반면 폐쇄계적 사고로는 토지세를 올리고 공개념과 소유 규제로 더 희소하게 만드는 것 외에 상상하지 못한다.

선거 때마다 아무리 물갈이를 해도 금세 ‘민주당화(化)’한다. 야당에선 윤희숙, 김미애 등 초선 의원의 존재감이 뚜렷한 데 비해 여당 초선들은 파묘법, 기업 규제법에 앞장서거나 조국 수호대를 자처하는 수준이다. 당내에는 더 이상 조순형, 유인태 같은 쓴소리하는 원로도 없다. 이 모든 게 총선 5개월 만에 드러난 현실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말마따나 여당의 총선 압승이 거꾸로 지리멸렬하던 야당에 기회가 된 셈이다.

이래서는 세계적인 대전환기에 176석 거대 여당이 국가 혁신의 장애물일 수밖에 없다. 여당 주축인 운동권 출신들은 논리가 딸리면 흔히 “그때 너희는 뭐했냐”고 묻곤 한다. 이제는 그 말에 “그 뒤에 너희는 무슨 공부를 했냐”고 되받아야 할 때다. 획일적인 군집은 오래가기 어렵다. 지금 여당에 절실한 것은 내부 비판과 토론을 허(許)하는 것이다.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