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에서 가장 견고하던 유리천장이 산산조각 났다.”

미국 3위 은행 씨티그룹이 10일(현지시간) 여성인 제인 프레이저 글로벌소비자금융 사장(53·사진)을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한다고 발표하자 월가는 ‘새로운 역사가 쓰였다’고 반응했다. 미 대형 은행에서 여성 CEO가 탄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수적인 대형 은행 CEO 자리는 월가 여성들에게 가장 깨기 힘든 유리천장으로 여겨졌다.

마이클 코뱃 현 CEO에 이어 내년 2월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프레이저는 강인하고 전략적인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스코틀랜드 태생으로 케임브리지대 거튼칼리지를 졸업한 그는 골드만삭스를 거쳐 맥킨지에서 10년간 파트너로 일하다가 2004년 씨티그룹에 합류했다. 지난해 글로벌소비자금융 담당 사장으로 승진해 차기 CEO 후보로 떠올랐으며, 코뱃 CEO가 예상보다 1년 빨리 퇴임하면서 자리를 물려받게 됐다.

프레이저는 씨티그룹에 재직하는 16년 동안 어려울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하며 역량을 인정받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씨티그룹이 미 정부로부터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았을 당시 전략 담당이던 프레이저는 주식영업 사업부인 스미스바니 매각 등을 이끌며 회사 체질 개선을 주도했다. 2013년에는 모기지금융 사업부를 재편했다. 2015년에는 회계부정 스캔들에 휘말린 중남미 사업부 실적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존 거스팩 전 씨티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제인은 터프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월가의 여성 최고참 임원 중 한 명인 프레이저는 평소 후배 여성들에게 “자신의 강점을 드러내는 데 수줍어하지 말라”고 충고해왔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씨티그룹이 역경에 처한 순간 또다시 중책을 맡게 됐다. 현재 자산 2조2000억달러 규모인 씨티그룹은 수년 동안 수익성과 주가 등에서 경쟁사에 밀렸다. 세계 최대 신용카드 사업자여서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부실채권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경쟁사에 비해 취약한 소비자금융을 강화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한편 여성 고위 임원들을 둔 JP모간체이스 등에서도 여성 CEO를 배출할지 관심이 쏠린다. 지금까지는 미 20위권 은행인 키코프 정도에서만 여성 CEO가 등장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