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법·검찰청법 대통령령, 16일까지 입법예고 기간
검경, 민감 조항들 입맛따라 해석 가능성…"피해자는 국민" 우려
수사권조정 대통령령 두고 법조계 "법치주의에 위배" 비판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해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의 대통령령 제정안이 법치주의에 위배된다는 법조계 비판이 나오고 있다.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수사 범위를 구체화하는 건 형벌의 종류와 절차를 법률로 정하게 한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검찰의 수사 권한 축소라는 실질적인 효과는 미흡한 반면 경찰과 검찰이 조문을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가 커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거란 우려도 나온다.
수사권조정 대통령령 두고 법조계 "법치주의에 위배" 비판
◇ "대통령령 제정안, 형사소송 법률주의에 반해"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개정된 검찰청법은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를 ▲ 부패 ▲ 경제 ▲ 공직자 ▲ 선거 ▲ 방위사업 ▲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규정해 놨다.

대통령령 제정안과 그 위임에 따른 법무부령에서는 구체적으로 ▲ 4급 이상 공직자 ▲ 3천만원 이상의 뇌물 사건 ▲ 5억원 이상의 사기·횡령·배임 등 경제 범죄 ▲ 5천만원 이상의 알선수재·배임수증재·정치자금 범죄 등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대폭 축소해놨다.

이 같은 대통령령 제정안은 형사소송 법률주의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 범위는 국민의 기본권과 직접 연결되는 사항이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대통령령이 아닌 법률로 정해놔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 수석부회장을 맡은 이완규 변호사는 "근본적으로 어떤 수사기관에 수사권을 어디까지 부여할 것인가는 법률 사항"이라며 "시행령으로 검사 수사권을 줄였다 늘였다 하는 건 형사소송 법률주의에 반하는 위헌"이라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검사의 수사권을 규정한 형사소송법엔 수사권 제한 규정이 없다"며 "형사소송법에 정해진 수사권을 검찰이 어떻게 행사할지 규정한 검찰청법에 수사 개시 범위 제한 조문을 만든 것도 법 체계상 전혀 맞지 않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대통령령 제정안이 모법인 검찰청법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다는 비판도 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인 양홍석 변호사는 "검찰청법에 부패범죄, 경제 범죄라는 용어들을 썼는데 이는 법률상 확정된 개념이 아닌 사회적 개념"이라며 "어디까지를 부패범죄라고 할지 법률에서도 구체화하지 못한 걸 대통령령에 넣는 건 형사사법 법정주의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령 제정안이 상위법을 넘어선다는 비판은 경찰에서도 나온다.

다만 경찰 측은 대통령령에 법률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검사의 통제 권한을 다수 신설한 부분 등을 문제 삼고 있다.
수사권조정 대통령령 두고 법조계 "법치주의에 위배" 비판
◇ 검·경 입맛 따라 조항 해석 여지 커
검찰 수사 개시가 가능한 공무원 지위나 범죄 액수를 특정한 자체가 모호한 해석을 낳는다는 지적도 있다.

'수사는 생물'이란 말처럼 수사 도중 범죄 대상이나 혐의가 변동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수사를 중단하고 사건을 다른 기관에 넘겨야 하느냐를 두고 검경 간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예를 들어 경찰이 단순 사기로 수사하다가 추가 피해자들이 나와서 범죄 액이 커지면 검찰에 사건을 송치해야 하느냐"라며 "범죄 혐의가 항상 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서 특정 사건을 누가 수사할지 애매모호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형사소송법 대통령령 제정안엔 갈등의 불씨가 될 조항까지 들어가 있다.

제정안은 검사가 사건을 수사하던 중 범죄 혐의가 검찰청법에 규정된 6대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사건을 경찰에 넘기게 했다.

단 구속영장이나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경우는 제외한다고 돼 있다.

경찰은 이 단서 조항 탓에 '검찰이 사실상 모든 범죄를 다 수사할 수 있다'며 수사권 조정 정신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검찰은 검찰대로 '수사 중에 사건을 넘기면 결국 국민만 피해를 본다'며 성토하고 있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인 정웅석 서경대 교수는 "국민 입장에서 수사 절차는 단순해야 하는데, 지금 만들어진 조항들을 보면 너무 복잡하다"며 "특히 고소·고발 사건은 검찰과 경찰의 핑퐁 게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양홍석 변호사 역시 "사건이 검찰과 경찰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건 비효율적"이라며 "그 과정에서 수사가 효율적으로 안 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수사권조정 대통령령 두고 법조계 "법치주의에 위배" 비판
◇ 누구도 만족 못 하는 수사권 조정안
법조계에서는 이번 수사권 조정안이 시행되더라도 검찰 개혁 효과는 미비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양 변호사는 "지금 만든 법은 검찰에 '쓸데없는 건 털어버리고 집중할 수사만 하면 된다'고 정해준 것"이라며 "검찰권을 제한하는 입법이 아니라 검찰 직접 수사를 응원하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양 변호사는 "가장 좋은 개혁 방안은 검찰이 수사를 안 하고 수사 지휘만 하며 경찰 수사의 적법성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경찰 수사권을 확대한 것이 자칫 '경찰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은 경찰의 강압 수사를 제보한 변호사를 경찰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송치한 사건을 거론하며 "이런 식의 보복성 수사가 경찰에서 이뤄지는데 그에 대한 통제가 없으면 검찰을 개혁하고자 만든 수사권 조정안이 경찰국가로 퇴행하는 문제를 만들 수 있다"고 목소리 높였다.

김한규 전 서울변회장은 "수사를 경찰이 하느냐 검찰이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범죄 피해자에 대한 효율적 구제"라며 수사권 조정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