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대학 학생회 소멸 위기…"학생회가 민원창구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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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대면활동 불가능해져…친목 활동 없어지며 학생사회 침체
학생회장들 "사업 진행 어렵고 책임은 늘어…차기 후보 안보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학생회가 매년 해오던 시험기간 간식사업을 기프티콘 지급으로 대체했어요.
학생들이 모이지 못하게 되면서 가장 기본적인 사업조차 못하게 되니까, 최악의 경우 학생회가 '전자민원시스템'처럼 변하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
지난해 12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신귀혜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한 학생회 운영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14일 대학가에 따르면 올해 코로나19 영향으로 사상 첫 비대면 환경을 맞은 각 대학에서 학생사회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2월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며 대학 새내기배움터, 오리엔테이션, 축제 등이 연이어 취소되는 등 사실상 학생 간 대면활동이 불가능해지면서 점차 위축되어가던 학생사회가 한층 더 침체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예전부터 '학생회가 행정실처럼 되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했는데, 코로나19 장기화로 학생회가 오프라인으로 학생들을 직접 만나고 연결해주는 일을 못하게 된다면 학생회와 행정실의 차이가 점차 없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내년 학생회장단을 선발하기 위한 2학기 선거를 앞둔 대학가에서는 다음 학생 대표자로 나설 이가 과연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 친목 빠지고 책임 늘어난 학생회…"섣불리 나서기 어려워"
대학 학생 대표들은 올해 유례없는 비대면 수업 환경을 맞이하게 되면서 학생회가 학생들 간 친밀감을 도모할 기회를 상실한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권순주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학생회 활동을 하는 이유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아서', '축제를 기획하는 것이 즐거워서' 등 다양한 동기가 있는데, 코로나19로 학생회 구성원들이 그 동기를 다 잃어버렸다"며 "정상적인 학교 활동을 접해보지 못한 새내기들은 학생회의 존재 이유조차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학생회가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낼 일은 오히려 늘었다는 의견도 있다.
학생회가 학생들을 대표해 비대면 수업으로 인한 수업 질 저하에 반발하고, 등록금 일부 반환·선택적 패스제 도입 등을 강력히 요구하는 등 대학과 대립각을 세워왔기 때문이다.
숭실대 총학생회 역시 비대면 수업 실시 이후 학생들의 총학생회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학생들의 민원이 예년에 비해 10배 가까이 늘어 최근 하루 평균 20∼30개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고 한다.
오종운 숭실대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이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들으면서 학생회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19 이후 학생회의 전통적인 루틴이 무너지면서 학생회가 행사도 못하고 고생하는 모습이 뻔히 보이다 보니 선뜻 다음 선거에 나서겠다는 사람이 없어진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는 지난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면서 각 단과대 학생 대표들이 총학생회 대체 기구인 단과대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를 구성해 총학생회의 빈자리를 대신해왔다.
다음 선거가 11월에 진행되는 만큼 매년 이맘때쯤이면 차기 후보들이 물망에 오르지만, 연석회의 내부에서는 "내년에는 연석회의 구성조차 어렵지 않겠느냐"는 부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총학생회는 물론, 차기 단과대 학생회장 후보를 물색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연석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김현지 자유전공학부 학생회장은 "개인적으로 지금 학생회가 암흑기라고 생각한다"며 "학생회를 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학업 등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렇게 희생하고 자리를 맡기엔 코로나19 상황에서 기획할 수 있는 사업도 제한적이다 보니 쉽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전문가 "학생회 침체 현상, 코로나19로 증폭"
4·19 혁명과 6월 항쟁 등 정치적 민주화의 역사에서 대학생들의 역할이 컸던 탓에 1990년대까지는 총학생회의 중요성이 높게 인식됐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는 투표율 저조로 총학생회 선거가 종종 무산되는 등 대학가에서 '학생사회 위기론'이 계속해서 불거져 왔다.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의 경우 2012년과 2014년에 투표율 미달로 무산됐고, 2009·2010·2020년 선거에서는 선거본부들이 학내 논란에 휩싸이면서 선거가 불발됐다.
전문가들은 꾸준히 관찰됐던 학생회 침체 현상이 최근 코로나19로 증폭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어릴 적부터 경쟁을 통해서만 자라온 청년 세대들이 대학에 와서 갑작스럽게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이 점점 어색해지면서 학생회의 위기가 계속 심화해 왔다"며 "이미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가 코로나19로 변화 속도가 빨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학생들이 만든 한국 현대사 - 서울대 학생운동 70년' 저술에 참여한 유용태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코로나 상황에서 전통적인 학생회 구성 방식을 거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학생들의 의사나 요구를 수렴하고 대변할 기구는 여전히 필요한 만큼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학생사회가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학생회장들 "사업 진행 어렵고 책임은 늘어…차기 후보 안보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학생회가 매년 해오던 시험기간 간식사업을 기프티콘 지급으로 대체했어요.
학생들이 모이지 못하게 되면서 가장 기본적인 사업조차 못하게 되니까, 최악의 경우 학생회가 '전자민원시스템'처럼 변하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
지난해 12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신귀혜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한 학생회 운영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14일 대학가에 따르면 올해 코로나19 영향으로 사상 첫 비대면 환경을 맞은 각 대학에서 학생사회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2월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며 대학 새내기배움터, 오리엔테이션, 축제 등이 연이어 취소되는 등 사실상 학생 간 대면활동이 불가능해지면서 점차 위축되어가던 학생사회가 한층 더 침체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예전부터 '학생회가 행정실처럼 되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했는데, 코로나19 장기화로 학생회가 오프라인으로 학생들을 직접 만나고 연결해주는 일을 못하게 된다면 학생회와 행정실의 차이가 점차 없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내년 학생회장단을 선발하기 위한 2학기 선거를 앞둔 대학가에서는 다음 학생 대표자로 나설 이가 과연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 친목 빠지고 책임 늘어난 학생회…"섣불리 나서기 어려워"
대학 학생 대표들은 올해 유례없는 비대면 수업 환경을 맞이하게 되면서 학생회가 학생들 간 친밀감을 도모할 기회를 상실한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권순주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학생회 활동을 하는 이유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아서', '축제를 기획하는 것이 즐거워서' 등 다양한 동기가 있는데, 코로나19로 학생회 구성원들이 그 동기를 다 잃어버렸다"며 "정상적인 학교 활동을 접해보지 못한 새내기들은 학생회의 존재 이유조차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학생회가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낼 일은 오히려 늘었다는 의견도 있다.
학생회가 학생들을 대표해 비대면 수업으로 인한 수업 질 저하에 반발하고, 등록금 일부 반환·선택적 패스제 도입 등을 강력히 요구하는 등 대학과 대립각을 세워왔기 때문이다.
숭실대 총학생회 역시 비대면 수업 실시 이후 학생들의 총학생회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학생들의 민원이 예년에 비해 10배 가까이 늘어 최근 하루 평균 20∼30개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고 한다.
오종운 숭실대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이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들으면서 학생회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19 이후 학생회의 전통적인 루틴이 무너지면서 학생회가 행사도 못하고 고생하는 모습이 뻔히 보이다 보니 선뜻 다음 선거에 나서겠다는 사람이 없어진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는 지난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면서 각 단과대 학생 대표들이 총학생회 대체 기구인 단과대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를 구성해 총학생회의 빈자리를 대신해왔다.
다음 선거가 11월에 진행되는 만큼 매년 이맘때쯤이면 차기 후보들이 물망에 오르지만, 연석회의 내부에서는 "내년에는 연석회의 구성조차 어렵지 않겠느냐"는 부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총학생회는 물론, 차기 단과대 학생회장 후보를 물색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연석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김현지 자유전공학부 학생회장은 "개인적으로 지금 학생회가 암흑기라고 생각한다"며 "학생회를 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학업 등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렇게 희생하고 자리를 맡기엔 코로나19 상황에서 기획할 수 있는 사업도 제한적이다 보니 쉽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전문가 "학생회 침체 현상, 코로나19로 증폭"
4·19 혁명과 6월 항쟁 등 정치적 민주화의 역사에서 대학생들의 역할이 컸던 탓에 1990년대까지는 총학생회의 중요성이 높게 인식됐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는 투표율 저조로 총학생회 선거가 종종 무산되는 등 대학가에서 '학생사회 위기론'이 계속해서 불거져 왔다.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의 경우 2012년과 2014년에 투표율 미달로 무산됐고, 2009·2010·2020년 선거에서는 선거본부들이 학내 논란에 휩싸이면서 선거가 불발됐다.
전문가들은 꾸준히 관찰됐던 학생회 침체 현상이 최근 코로나19로 증폭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어릴 적부터 경쟁을 통해서만 자라온 청년 세대들이 대학에 와서 갑작스럽게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이 점점 어색해지면서 학생회의 위기가 계속 심화해 왔다"며 "이미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가 코로나19로 변화 속도가 빨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학생들이 만든 한국 현대사 - 서울대 학생운동 70년' 저술에 참여한 유용태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코로나 상황에서 전통적인 학생회 구성 방식을 거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학생들의 의사나 요구를 수렴하고 대변할 기구는 여전히 필요한 만큼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학생사회가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