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인사권으로 복종시키는 권력의 메커니즘 숙지" 8년 가까이 이어진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관료의 정권 눈치 보기라고 할 수 있다.
현지 언론은 이를 '손타쿠'(忖度)라고 표현했고 이 단어는 2017년 올해의 유행어에 선정될 정도로 자주 쓰였다.
손타쿠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특히, 명시되지 않았음에도 속마음을 헤아려 적절하게 조치하는 것' 등으로 풀이된다.
공무원이 민감한 현안을 정권 핵심 인사의 입맛에 맞게 처리하거나 속된 말로 '알아서 기는' 대응을 한 것을 지칭할 때 손타쿠라는 표현이 등장하곤 한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눈치 보기 정도가 적당할 듯하다.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와의 친분이 있는 인물이 이사장이던 모리토모(森友)학원이 국유지를 헐값에 사들인 사건의 진상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공문서 변조는 관료의 정치 권력 눈치 보기 사례로 꼽힌다.
권력과 사학 재단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자 아베 총리는 "아내나 내가 관여했다면 총리도 국회의원도 그만두겠다"고 국회에서 공언했다.
그런데 이후 재무성이 국회에 제출한 국유지 매각 경위에 관한 문서에서 아키에 여사가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할만한 정황이 담긴 부분이 삭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각종 진상 조사 등에서도 의혹은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았으나 관료가 아베 총리 측에 불리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문서를 조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매각 업무를 담당했던 공무원은 상사로부터 문서 변조를 강요받았다는 취지의 수기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파문이 일었다.
관가에서는 총리관저 측의 직접 지시가 없었더라도 '총리를 지키면 출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살 공무원의 상사가 공문서 변조에 앞장섰을 것이라는 촌평까지 나올 정도다.
이 밖에 총리 관저와 가까운 인물이 주요 자리에 발탁되는 인사가 반복됐고 정치권 인맥이 두터운 구로카와 히로무(黑川弘務) 도쿄고검 검사장의 정년이 이례적으로 연장되는(이후 도박 추문으로 낙마) 등 '정치 권력에 잘 보여야 출세한다'는 인식이 8년 가까이 이어진 아베 정권에서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정권은 곧 저물지만 눈치보기 행정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관료가 정치인의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를 조장한 인물로 꼽히기 때문이다.
인사에 미치는 총리관저의 영향력을 키운 것이 결정적이었다.
아베 정권은 총리와 내각을 보좌·지원하는 정부 기관인 내각관방(內閣官房)에 각 성청(省廳·중앙 정부 기관) 심의관급 이상 고위 관료 약 600명의 인사 실무를 담당하는 내각인사국을 2014년 5월 신설했다.
이에 따라 스가 관방장관이 인사 대상자의 적격성 심사, 간부 후보 명단 작성을 담당하고 총리와 임면 협의를 하게 됐다.
일련의 조치로 인해 스가를 중심으로 한 총리관저의 영향력이 커졌고 일사불란한 정책 추진이 가능해졌다.
반면 관료의 총리관저 눈치 보기가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모리토모 학원 문제와 같은 정치 스캔들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총리관저의 지시에도 일선 기관이 이견을 제기하지 않으면 행정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갈팡질팡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에서는 현장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는 상명하달식 행정의 난맥상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스가는 정권이 인사권을 최대한 활용해 관료를 자신들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확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2년 3월 출간한 책 '정치가의 각오-관료를 움직여라'에서 인사권이 '전가의 보도'(傳家の寶刀,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중요한 칼 혹은 마지막에 쓰는 결정적인 수단이라는 의미)라고 규정했다.
스가는 당시 저서에서 "인사권은 대신(장관에 해당)에게 주어진 큰 권한이다.
(중략) 인사에 의해 대신의 생각이나 목표로 하는 방침이 조직 내외에 메시지로 전달된다.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조직을 긴장시키고 일체감을 높이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관료는 '인사'에 민감하며 이를 통해 대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헤아린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2007년 총무상 재임 시절 NHK 수신료 인하를 추진했는데 NHK 미나미 도시유키(南俊行) 당시 방송정책과장이 언론사 논설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런 계획이 순조롭게 추진될지 의문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그를 전격 경질했다.
갑자기 과장을 교체하면 언론이 문제로 삼을 것이라고 주변에서 우려했으나 스가는 인사를 강행했다.
그는 어떤 잡지는 "아베 정권의 괴벨스"(요제프 괴벨스, 독일 나치스 정권의 선전장관)라고 혹평하기도 했다면서도 "나의 강한 결의를 안팎에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중략) 결과적으로 관료들 사이에 긴장감이 생겼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스가는 13일 민영방송 후지TV에 출연해서 내각인사국 제도를 수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밝혔으며 정권이 결정한 정책 방향에 반대하는 간부는 "이동시킨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나카지마 다케시(中島岳志) 도쿄공업대 교수는 자민당 주요 정치인을 분석한 저서 '자민당, 가치와 리스크의 매트릭스'에서 "인사권을 쥐면 사람은 복종한다.
인사권자에게 사람의 흐름이 집중하고 정보가 모인다.
이런 권력의 메커니즘을 숙지하고 행사하는 것이 스가 씨의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내각인사국 제도를 만들면서 "직업 관료의 인사를 관저가 장악하는 구조가 완성되며 스가 씨의 권력이 흔들림 없는 것이 된다.
관료는 관저의 눈치를 보면서 행동하게 됐다.
(중략) 문서·자료의 변조 등은 아베 내각을 특징짓는 현상이 되며 국민의 행정에 대한 신뢰 저하를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아베 내각 계승'을 표방한 스가가 총리가 되면 일본 관료의 소신 발언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