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 비판 국책연구원 문책하라"…도 넘은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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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15일 발간된 조세재정연구원의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두고 SNS에 맹비난을 퍼부었다. 지역화폐가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되레 역효과만 초래한다는 조세연의 연구결과가 완전히 엉터리라는 주장이다. 그 이유로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에 어긋난다는 내용 등 다섯 가지를 들었다. 이 지사는 해당 연구가 나온 경위를 엄정히 조사하고 책임자를 문책해야한다고까지 적었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와 경제 전문가들은 이 지사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경제와 국책연구기관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주장일 뿐더러, 정치가 연구를 탄압하려는 시도”라며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정부 정책에 무조건 찬성하는 연구만 하는 것은 정부의 성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주된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 지사가 자신의 대표적인 정책을 비판받자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본다. '기재부와 협의한 조세연이 왜' 등의 표현을 통해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등을 놓고 갈등을 빚은 기재부를 우회적으로 때렸다는 시각도 있다.
이 지사가 '조세연 보고서는 엉터리'라고 말한 근거 다섯 가지를 세 가지로 압축하고, 이에 대한 국책연구기관 및 경제 전문가들의 반박을 각각 들어 정리했다.
이 지사가 든 네번째 이유도 이와 똑같은 논리다. 이 지사는 "소비자가 대형마트 대신 골목상권 소형 매장을 사용하게 하면서 소비자의 후생 효용을 떨어트렸다고 했는데, 골목상권 영세 자영업 진흥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목표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들은 "말도 안 되는 논리"라고 반박한다. 정부 정책이 성공하려면 정책을 무조건 칭찬하는 게 아니라 건전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는 논리"라며 "정책이 잘못됐으면 잘못됐다고 하고 이를 받아들여 수정해야지, 국책연구기관이 칭찬만 해서 잘못된 정책으로 부작용이 눈덩이처럼 커지면 장기적으로 정부가 큰 타격을 입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이 관계자는 또 "대형마트를 가지 못하고 동네 슈퍼에서 쇼핑하면 소비자의 불편이 초래된다는 건 주장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라며 "이런 단점을 감수하고서라도 영세 자영업자들을 살려야 한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인데, 이 지사의 주장은 이를 의도적으로 곡해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자신이 주도해 확산시킨 지역화폐 정책을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와 교묘하게 동일시하도록 사실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들은 이 주장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소득 관련 통계는 가장 빠른 게 몇 달, 늦으면 1년이 넘은 뒤 나오는데 이 지사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며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으니 연구가 현실과 다르다는 주장은 어떤 연구도 현실에 쓸모가 없다는 말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이 지사가 이런 발언을 한 건 자신의 지역화폐 정책의 성과가 변변찮았다는 내용이 보고서에 담겨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라는 시각도 있다. 보고서에는 2010~2018년 전국사업체 전수조사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역화폐 발행으로 인한 유의미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관측되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어서다.
이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이던 2016년부터 청년들에게 지역화폐인 성남사랑상품권으로 '청년배당'을 지급했고, 이때부터 발행액이 급격히 늘었다. 조세연 보고서의 연구 대상에는 성남시가 2016~2018년 발행했던 지역화폐의 성과도 포함된다.
이 지사는 세 번째 이유로 "2년 전 데이터를 갖고 한 연구를 지금 내놓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규교육과정만 이수해도 지사 주장이 전혀 말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2년 전 통계가 작년이나 올해가 돼서야 공개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이번 연구는 상당히 빨리 진행 및 발표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지사 설명과 정반대로, 대통령 직속 정책기원회가 재정학회에 의뢰해 올 초 제출받은 용역보고서는 "지역화폐가 지역 소비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다. 오히려 이 지사가 든 연구결과들이 지역화폐의 긍정적인 영향을 과장했다는 게 실증 분석 결과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과 경기연구원은 표를 받기 위해 지역화폐 확대를 주장하는 지역 정치인들의 영향을 크게 받는 연구기관이다. 특히 경기연구원은 성남시 및 경기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받은 용역보고는 통계청 자료를 활용해 2016년 이후 발행 규모를 급격히 늘린 경기 성남시 등 3개 지자체에서 지역화폐가 2016~2018년 고용에 미친 효과를 실증 분석했다. 결론은 ‘긍정적인 효과가 없다’였다. 2018년까지 지역화폐를 도입한 53개 지자체로 분석 대상을 확대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SNS에 "사실 최저임금, 지역화폐, 기본대출 모두 굳이 국책연구기관 보고서로 나오지 않아도 경제학 원론만 읽으면, 혹은 경제활동을 하는 성인은 다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며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내용을 갖고 토론하고 더 바른 정책을 모색해야 할 주요 대권후보가 저렇게 학자들을 탄압하는 게 경악스럽다"고 꼬집었다.
그는 "국책연구기관 등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처음에 목소리를 내다가 정권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물었는데, 지금 보면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옹호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라며 "이 지사의 글은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일때의 오만함과 무지를 연상케 한다"고 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이 지사가 '조세연 보고서는 엉터리'라고 말한 근거 다섯 가지를 세 가지로 압축하고, 이에 대한 국책연구기관 및 경제 전문가들의 반박을 각각 들어 정리했다.
1. 지역화폐 비판=문재인 정부 음해?
이 지사는 조세연 보고서가 엉터리라는 첫번째 이유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을 정면 부인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 지사는 "고향사랑상품권 지급을 통한 골목상권 활성화 등 현 정부의 핵심 정책인 지역화폐 정책을 부정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는 2019년부터 공약에 따라 본격적으로 지역화폐정책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번 1차 재난지원금도 전자지역화폐로 지급했다"고 썼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니 비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이 지사가 든 네번째 이유도 이와 똑같은 논리다. 이 지사는 "소비자가 대형마트 대신 골목상권 소형 매장을 사용하게 하면서 소비자의 후생 효용을 떨어트렸다고 했는데, 골목상권 영세 자영업 진흥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목표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들은 "말도 안 되는 논리"라고 반박한다. 정부 정책이 성공하려면 정책을 무조건 칭찬하는 게 아니라 건전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는 논리"라며 "정책이 잘못됐으면 잘못됐다고 하고 이를 받아들여 수정해야지, 국책연구기관이 칭찬만 해서 잘못된 정책으로 부작용이 눈덩이처럼 커지면 장기적으로 정부가 큰 타격을 입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이 관계자는 또 "대형마트를 가지 못하고 동네 슈퍼에서 쇼핑하면 소비자의 불편이 초래된다는 건 주장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라며 "이런 단점을 감수하고서라도 영세 자영업자들을 살려야 한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인데, 이 지사의 주장은 이를 의도적으로 곡해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자신이 주도해 확산시킨 지역화폐 정책을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와 교묘하게 동일시하도록 사실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2. 2010~2018년 대상 연구라 낡았다?
이 지사는 조세연 연구 결과가 2010~2018년 자료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가 지역화폐 발행을 본격적으로 늘렸던 2019~2020년 데이터가 아니기 때문에 현실과 다르다는 것이다.국책연구기관 관계자들은 이 주장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소득 관련 통계는 가장 빠른 게 몇 달, 늦으면 1년이 넘은 뒤 나오는데 이 지사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며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으니 연구가 현실과 다르다는 주장은 어떤 연구도 현실에 쓸모가 없다는 말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이 지사가 이런 발언을 한 건 자신의 지역화폐 정책의 성과가 변변찮았다는 내용이 보고서에 담겨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라는 시각도 있다. 보고서에는 2010~2018년 전국사업체 전수조사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역화폐 발행으로 인한 유의미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관측되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어서다.
이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이던 2016년부터 청년들에게 지역화폐인 성남사랑상품권으로 '청년배당'을 지급했고, 이때부터 발행액이 급격히 늘었다. 조세연 보고서의 연구 대상에는 성남시가 2016~2018년 발행했던 지역화폐의 성과도 포함된다.
이 지사는 세 번째 이유로 "2년 전 데이터를 갖고 한 연구를 지금 내놓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규교육과정만 이수해도 지사 주장이 전혀 말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2년 전 통계가 작년이나 올해가 돼서야 공개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이번 연구는 상당히 빨리 진행 및 발표된 것"이라고 했다.
3. 다른 국책연구기관 연구 결과와 다르다?
이 지사는 마지막으로 "다른 국책연구기관의 연구결과와 상반된다"고 주장했다. 행정안전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지방행정연구원과 경기연구원은 지역화폐가 매우 유용한 정책이기 때문에 확대해야 한다는 결과를 내놨다는 설명이다.하지만 이 지사 설명과 정반대로, 대통령 직속 정책기원회가 재정학회에 의뢰해 올 초 제출받은 용역보고서는 "지역화폐가 지역 소비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다. 오히려 이 지사가 든 연구결과들이 지역화폐의 긍정적인 영향을 과장했다는 게 실증 분석 결과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과 경기연구원은 표를 받기 위해 지역화폐 확대를 주장하는 지역 정치인들의 영향을 크게 받는 연구기관이다. 특히 경기연구원은 성남시 및 경기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받은 용역보고는 통계청 자료를 활용해 2016년 이후 발행 규모를 급격히 늘린 경기 성남시 등 3개 지자체에서 지역화폐가 2016~2018년 고용에 미친 효과를 실증 분석했다. 결론은 ‘긍정적인 효과가 없다’였다. 2018년까지 지역화폐를 도입한 53개 지자체로 분석 대상을 확대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SNS에 "사실 최저임금, 지역화폐, 기본대출 모두 굳이 국책연구기관 보고서로 나오지 않아도 경제학 원론만 읽으면, 혹은 경제활동을 하는 성인은 다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며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내용을 갖고 토론하고 더 바른 정책을 모색해야 할 주요 대권후보가 저렇게 학자들을 탄압하는 게 경악스럽다"고 꼬집었다.
그는 "국책연구기관 등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처음에 목소리를 내다가 정권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물었는데, 지금 보면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옹호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라며 "이 지사의 글은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일때의 오만함과 무지를 연상케 한다"고 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