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가 미국이 중국에 부과한 관세가 부당하다고 15일(현지시간) 판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보호주의 정책에 제동을 건 것인데, 미국은 즉각 WTO의 중국 편향성을 문제삼으며 반발했다. WTO의 이번 결정이 미·중 갈등을 더욱 키울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WTO에서 1심 역할을 하는 패널은 이날 미국이 2340억달러(약 276조1000억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부과한 관세에 대해 국제 무역 규칙을 위반했다고 판정했다. 패널은 해당 관세가 중국 제품에만 적용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 무역 관행에서 벗어난 무리한 조치를 취했다는 첫 판정이라는 점에서 의미도 있다.

하지만 WTO의 이번 판정이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정책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판정이 1심인 데다가 최종심을 담당하는 상소기구는 미국의 보이콧으로 기능이 정지돼 실질적인 효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WTO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 깊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성명을 내고 “중국의 정책은 국제무역을 왜곡하고 미국 경제에 해를 끼치고 있다”며 “중국이 WTO를 이용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WTO 개혁을 촉구해 왔다. 조시 홀리 미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이 WTO에서 탈퇴하고 이를 폐지하기 위한 노력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재임 기간 내내 WTO를 비난하면서 탈퇴 가능성을 내비쳐온 트럼프 대통령이 WTO와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고 관측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무역을 비롯해 외교, 안보, 기술, 인권 등 전방위로 충돌해온 미·중 갈등에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이 WTO 결정을 존중하고, 다자 무역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실질적 조처를 취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WTO는 중국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도록 내버려 뒀기 때문에 우리는 WTO에 대해 뭔가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나는 WTO의 열혈 팬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박상용 기자 youp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