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장기화로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을 끌어모아) 부동산 투자’ 등의 부작용이 심각해지자 금융당국이 은행들에 신용대출에 대한 속도조절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들은 조만간 올해 연말까지 신용대출을 줄이겠다는 내용의 계획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다. 금감원은 지난 14일 주요 은행 여신담당자들을 모아 신용대출 폭증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급증하고 있는 신용대출 문제 해법을 모색하자고 주문했다.
5대 은행 기준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달 전달 대비 4조755억원이 늘어 사상 최고 증가폭을 기록하더니, 이달 들어서도 지난 10일까지 1조1425억원 불어 통상 한 달간의 증가폭을 넘어섰다.
금감원이 소집한 회의에선 한 번에 2억원 이상의 신용대출을 받아갈 수 있는 중·고소득자 신용대출이 특히 큰 폭으로 늘었다는 점이 도마위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은행들은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직 대상 신용대출의 한도를 죄는 방안 마련하고 있다.
이날 기준 5대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연 1.77~3.7%로 전문직 신용대출의 한도는 4억원이다. 하지만 4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신용대출도 다수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 관계자는 “의사들 대상의 신용대출 닥터론은 은행별 최대 한도가 5억원이 넘기도 하고, 대형 로펌 변호사에게는 10억원 육박하는 돈도 나갔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신용대출 금액대별 차주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거액의 신용대출이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있다. 집값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금융권에서는 은행들이 거액의 신용대출을 해주면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도록 하는 방식의 '우회 규제'가 유력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담보없이 신용만으로 큰 돈을 빌려줬으니 사고가 날 것에 대비해 은행들이 더 많은 돈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대손충당금 부담이 늘어나면 은행들은 신용대출 수익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다만 금감원은 금리를 올려 신용대출을 조이라는 주문은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 수요가 줄어들 수 있지만 가격통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하지만 은행들은 신용대출의 각종 우대금리 금리 조건을 없애거나 강화하는 방식으로 최저금리 조절에도 나설 계획이다.
은행권은 고액 연봉자들이 받아가는 0.2%~1%포인트 가량의 우대금리를 낮추면 받을 수 있는 자연스레 금리를 낮춰 대출 증가세를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신용이 높은 사람들이 저렴한 금리로 빚을 낼 수 없는 것은 금융의 속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은행들끼리 ‘신용대출 금리 담합’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은행들의 조달금리는 떨어졌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금리를 높이면 결국 금융소비자만 피해를 본다는 얘기다.
은행 관계자는 “금리인하 경쟁을 덜 해도되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며 “수요가 고정적인 일부 신용대출의 경우 우대금리를 낮추면 당장은 은행 수익성이 올라가는 효과가 난다”고 했다.일각에서는 신용대출 막차에 타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단기에 잔액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신용대출 급증세가 경제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면서도 "코로나19 피해가 심각한 만큼 저소득 계층의 생활고와 관련된 대출은 지장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우/송영찬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