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서재] "혁신은 오직 자유의 토양에서만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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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리들리 《혁신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의도·계획·설계의 산물인 적 없던 '혁신'
실패할 자유 위에서 개선 통해 열매 맺어"
"의도·계획·설계의 산물인 적 없던 '혁신'
실패할 자유 위에서 개선 통해 열매 맺어"
《이성적 낙관주의자》 《본성과 양육》 등 베스트셀러를 쓴 영국의 저명한 과학저술가이자 문명비평가인 매트 리들리가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혁신이라는 화두에 매달렸다. 지난 5월 출간한 화제의 신작 《혁신은 어떻게 작동하는가(How Innovation Works)》에서다. 원시시대 이후 비참하고 낙후했던 인류의 삶을 그나마 지금처럼 개선시킬 수 있었던 수많은 혁신은 도대체 어떤 원리로 등장한 것일까?
리들리는 진화생물학 배경을 지닌 사상가답게, 자연현상으로서 생명체의 진화가 사회현상으로서 혁신의 출현과 본질이 같다고 말한다. 혁신이란 결국 세상에 편재하는 에너지, 정보, 작업을 인위로 재조합 또는 신결합한 결과물인데 이는 유전자 변이와 교배를 통해 새로운 종(種)이 출현하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혁신은 자연 과정에서는 도저히 나올 법하지 않은 배열 또는 조합으로 탄생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대의 형태로 출현할 수 있는 참으로 경탄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도대체 이 불가능한 위업이 어떻게 달성될 수 있었는가? 증기기관 전구 원자력과 같은 에너지 혁신기술부터 시작해 천연두 말라리아 같은 고질병을 극복한 의약기술, 내연기관 터빈 스크루 같은 수송기술, 인공비료부터 유전자 편집기술에 이르는 식량기술, 라디오와 컴퓨터 같은 정보통신기술 그리고 컨테이너 및 바퀴 달린 가방 같은 아이디어 혁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스토리에는 뭔가 공통된 원리가 있다.
먼저, 혁신은 이전의 성과에 바탕을 두고 참으로 점진적으로 개선되면서 출현한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완성된 형태로 갑자기 떨어지는 법은 없다. 와트의 증기기관이 등장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소박한 선행 기술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 또 얼마나 많은 개선이 이뤄졌는지를 사람들은 간과한다.
위대한 혁신은 의도, 계획, 설계의 산물인 적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에디슨의 대나무 필라멘트처럼 미련할 정도로 수많은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거쳤거나 플레밍의 푸른곰팡이처럼 뜻하지 않은 ‘우연한 사건(serendipity)’을 계기로 탄생했다.
더 나아가 현 단계에 축적된 정보의 자유로운 교류 네트워크가 활발할수록, 또는 실패할 자유를 충분히 보장해줄수록 혁신의 탄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자유야말로 혁신의 진정한 토양이다.
르네상스와 계몽시대 이탈리아의 혁신은 한결같이 활발한 거래와 이동의 자유가 보장된 다양한 도시 사회에서 나왔고 종이, 화약 같은 고대 중국의 혁신도 통일 대국이 아니라 변방 각국이 할거하던 시대에 이뤄졌다. 미국이 이룩한 위대한 혁신의 상당 부분은 2차 대전으로 거대 정부가 출현하기 전 민간 기업에서 나왔다. 그나마 기업 자유를 철저히 존중하는 전통 덕분에 미국은 20세기 후반에도 혁신 대국으로 지위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점점 숨 막히는 규제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고, 기업들은 진정한 혁신보다는 지대 추구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리들리는 개탄한다. 또 통합 이후의 유럽 사회는 사실상 혁신 동력을 상실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국가 주도로 추진하는 혁신은 기껏해야 방위산업이나 우주산업 정도에서 나올 뿐이며, 인류의 삶을 진보시키는 진정한 혁신을 낳기 어렵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편, 사람들은 신기술이 미칠 영향에 대해 단기에는 과대평가하고 장기에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1950년대를 전후해 인공지능이 깜짝 등장했다가 기나긴 동면기를 거쳤듯, 대부분의 혁신 기술은 초기 과열기를 거쳤다가 이어지는 실패로 사람들 뇌리에서 잠시 잊혀진다. 때로는 몬산토의 글리포세이트 제초제처럼 근거 없는 공포감이나 불안감으로 뭇매를 맞기도 한다. 그러다가 오랜 시간을 거치며 사람들이 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씩 개선되고 결국 세상을 바꿔놓는다. 지금 블록체인이나 자율주행차도 비슷한 경로를 밟게 될 것이라고 본다.
기술 혁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일체의 비관론을 일축하는 당당한 낙관론이다. 누가 뭐라 하든 궁극에는 모든 사람이 혁신의 혜택 속에 살게 돼 있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송경모 <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리들리는 진화생물학 배경을 지닌 사상가답게, 자연현상으로서 생명체의 진화가 사회현상으로서 혁신의 출현과 본질이 같다고 말한다. 혁신이란 결국 세상에 편재하는 에너지, 정보, 작업을 인위로 재조합 또는 신결합한 결과물인데 이는 유전자 변이와 교배를 통해 새로운 종(種)이 출현하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혁신은 자연 과정에서는 도저히 나올 법하지 않은 배열 또는 조합으로 탄생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대의 형태로 출현할 수 있는 참으로 경탄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도대체 이 불가능한 위업이 어떻게 달성될 수 있었는가? 증기기관 전구 원자력과 같은 에너지 혁신기술부터 시작해 천연두 말라리아 같은 고질병을 극복한 의약기술, 내연기관 터빈 스크루 같은 수송기술, 인공비료부터 유전자 편집기술에 이르는 식량기술, 라디오와 컴퓨터 같은 정보통신기술 그리고 컨테이너 및 바퀴 달린 가방 같은 아이디어 혁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스토리에는 뭔가 공통된 원리가 있다.
먼저, 혁신은 이전의 성과에 바탕을 두고 참으로 점진적으로 개선되면서 출현한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완성된 형태로 갑자기 떨어지는 법은 없다. 와트의 증기기관이 등장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소박한 선행 기술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 또 얼마나 많은 개선이 이뤄졌는지를 사람들은 간과한다.
위대한 혁신은 의도, 계획, 설계의 산물인 적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에디슨의 대나무 필라멘트처럼 미련할 정도로 수많은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거쳤거나 플레밍의 푸른곰팡이처럼 뜻하지 않은 ‘우연한 사건(serendipity)’을 계기로 탄생했다.
더 나아가 현 단계에 축적된 정보의 자유로운 교류 네트워크가 활발할수록, 또는 실패할 자유를 충분히 보장해줄수록 혁신의 탄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자유야말로 혁신의 진정한 토양이다.
르네상스와 계몽시대 이탈리아의 혁신은 한결같이 활발한 거래와 이동의 자유가 보장된 다양한 도시 사회에서 나왔고 종이, 화약 같은 고대 중국의 혁신도 통일 대국이 아니라 변방 각국이 할거하던 시대에 이뤄졌다. 미국이 이룩한 위대한 혁신의 상당 부분은 2차 대전으로 거대 정부가 출현하기 전 민간 기업에서 나왔다. 그나마 기업 자유를 철저히 존중하는 전통 덕분에 미국은 20세기 후반에도 혁신 대국으로 지위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점점 숨 막히는 규제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고, 기업들은 진정한 혁신보다는 지대 추구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리들리는 개탄한다. 또 통합 이후의 유럽 사회는 사실상 혁신 동력을 상실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국가 주도로 추진하는 혁신은 기껏해야 방위산업이나 우주산업 정도에서 나올 뿐이며, 인류의 삶을 진보시키는 진정한 혁신을 낳기 어렵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편, 사람들은 신기술이 미칠 영향에 대해 단기에는 과대평가하고 장기에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1950년대를 전후해 인공지능이 깜짝 등장했다가 기나긴 동면기를 거쳤듯, 대부분의 혁신 기술은 초기 과열기를 거쳤다가 이어지는 실패로 사람들 뇌리에서 잠시 잊혀진다. 때로는 몬산토의 글리포세이트 제초제처럼 근거 없는 공포감이나 불안감으로 뭇매를 맞기도 한다. 그러다가 오랜 시간을 거치며 사람들이 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씩 개선되고 결국 세상을 바꿔놓는다. 지금 블록체인이나 자율주행차도 비슷한 경로를 밟게 될 것이라고 본다.
기술 혁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일체의 비관론을 일축하는 당당한 낙관론이다. 누가 뭐라 하든 궁극에는 모든 사람이 혁신의 혜택 속에 살게 돼 있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송경모 <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