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전직 장관 9명과 만찬 회동을 했다.
조명균 장관을 비롯해 손재식·이세기·이홍구·강인덕·임동원·박재규·정세현·홍용표 전 장관 등이 참석했다.
이날로 취임 53일이 된 이 장관은 "요즘 지속 가능한 남북 관계와 일관성 있는 대북 정책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정권이 바뀜에 따라 우리가 원치 않는 경우에도 대북 정책 기조 역시 그때그때 변해 왔다"며 "남과 북이 평화를 선점해 평화 공동체를 형성한다면 '동북아 평화 경쟁'으로 확대돼 한반도 분단을 둘러싼 미·중 간 갈등도 적대적 관계에서 비적대적 관계로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고 말했다.
또 "남북 관계는 단 한순간도 쉬운 적이 없었다"며 "저 역시 조바심을 내지 않고 작은 접근을 통해 협력의 공간을 확대하려는 단단한 마음으로 임해 왔다"고 했다.
이에 노태우 정부 시절 초대 통일원 장관이었던 이홍구 전 총리가 "통일부 장관은 본인이 어떻게 하는 것보다 국내외 정세에 의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가 결정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정세나 미국의 대선 등을 변수로 꼽으며 "여러 변수가 한반도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으니, 통일 정책을 일관성 있게 잘 끌고 가 달라"고 당부했다.
정세현 전 장관도 "이 장관이 열심히 노력하는데 아직 북한이 일절 반응이 없는 것은 아쉬운 점"이라며 "그렇게 계속 두드리고 작은 보폭 정책으로 나가다 보면 결국 북쪽도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올해 큰 장마와 연이은 태풍으로 북한의 식량 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식량 지원에 대한 계획을 적극적으로 수립하면서 지자체들의 대북 사업을 승인하는 것도 계속해 나가는 게 북쪽에 좋은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두환 정부 때 국토통일원을 이끌었던 손재식 전 장관은 "대북 협상에서 특히 유의할 것은 북한은 통일 전 동독과 크게 다르다는 점"이라며 "동독은 서독을 침범한 일도, 핵을 개발한 일도, 부자 세습 체제를 구축한 일도 없고 기본 조약을 파기하지도 않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손 전 장관이 "민주 평화 통일과 통일부의 성공을 위해서"라고 건배사를 선창하자 참석자들은 "위하여"라고 화답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