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조합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 압구정동 압구정특별계획3구역. /한경DB
재건축조합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 압구정동 압구정특별계획3구역. /한경DB
재건축 아파트 거주 의무 도입을 앞두고 주요 단지들이 조합설립에 잰걸음 중이다. 이를 적용받으면 향후 사업 진척이 더뎌질 수 있어서다. ‘막차’를 타려는 매수세가 붙고 있지만 최장 10년 동안 되팔 수 없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동 한양2차재건축추진위원회는 20일 조합창립 총회를 열 예정이다. 동(棟)별 동의율이 50%에 미달해 지난 3월 정비사업 일몰제에 따라 구역해제 위기에 몰렸던 곳이다. 이번엔 동별 동의율을 높이고 전체 토지등소유자 동의율도 86%로 끌어올렸다.

내홍 등으로 17년째 사업이 멈춰 있던 잠원동 신반포2차는 조합창립총회 일정을 다음달 13일로 잡았다. ‘최대어’ 압구정도 꿈틀대는 중이다. 압구정특별계획구역 4구역과 5구역은 조합설립 기준인 75%를 채웠다. 중심에 들어선 3구역은 동의율 70%를 넘겼다. 압구정3구역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더 미루다간 조합설립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어 서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건축 추진이 지지부진하던 이들 단지가 갑자기 속도를 높이는 건 2년 거주 요건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연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개정을 통해 서울 등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재건축 아파트의 조합원 분양자격에 2년 실거주 규정을 두기로 했다. 통상 재건축 아파트의 실거주 비율이 낮은 점을 감안하면 법 시행 이후엔 조합을 설립하기 더욱 힘들어진다. 새 아파트를 배정받지 못하고 현금청산하게 될 이들이 흔쾌히 사업에 동의할 이유가 없어서다.

일부 단지는 규제 전 막차를 타려는 매수세가 붙으면서 가격이 높아지는 중이다. 지금 사두고 법 개정 전 조합이 설립된다면 실거주를 하지 않더라도 새 아파트 분양 자격을 갖추기 때문이다. 압구정동에서 가장 넓은 면적대인 현대7차 전용면적 245㎡는 지난달 65억원에 손바뀜했다. 이 주택형의 마지막 거래인 지난해 5월(52억원)보다 13억원 오른 가격이다. 전용 157㎡도 지난달 42억원에 실거래돼 올해 초 35억5000만원 대비 7억원가량 올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패닉 바잉’이 자칫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투기과열지구 재건축단지는 일단 조합이 설립되면 되팔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1주택자는 10년을 보유하고 5년 이상 거주해야 조합원 지위 양도가 가능하다. 향후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더라도 원하는 시기에 매각할 수 없다는 의미다. 다주택자는 조합원 지위 양도 자체가 안 된다. 이 같은 조건을 지키지 않고 되팔면 매수인이 조합원 자격을 얻지 못한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인허가 단계 별로 일정 기간 진척이 없을 땐 매각이 가능해지지만 제값을 받을지는 미지수”라며 “거주 요건이 강화되기 전에 빨리 사야 한다는 중개업소 말에 넘어가 덜컥 샀다가 10년 동안 물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은 임대사업자 등에 대해 실거주 요건을 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밖에도 상속이나 이혼, 직장이나 학업 등의 사유가 해당된다. 나머지 기준은 같은 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압구정동 A공인 관계자는 “거주 요건이 위헌이란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데다 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도 않았다”면서 “실수요자가 아니라면 섣부르게 의사결정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