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조원의 연금을 굴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운용역 4명이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연금은 이들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징계위원회를 통해 해임했다. 운용역 이탈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일어난 기강 해이 사례여서 국민 노후자금 관리 부실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8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기금운용본부에서 대체투자를 담당하는 책임운용역 1명, 전임운용역 3명이 대마초를 피운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경찰에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의 수사는 기금운용본부가 있는 전북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가 맡고 있다.

전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4명 중 일부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검사에서 마약 양성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퇴근 후 주거지에서 대마초를 흡입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대마초는 SNS에서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구체적인 투약 횟수 등은 파악되지 않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를 이달 말까지 끝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건이 불거지자 국민연금은 지난 9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이들 4명을 해임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소수의 일탈이긴 하지만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기관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국민연금은 752조2000억원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대체투자 부문의 규모는 90조원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직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해외 출장이 잦은 이들 4명 대체투자 운용역은 해외파가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기금운용본부에서는 직원들의 기강해이와 관련한 사건이 계속 일어났다. 2018년 10월에는 기금운용본부 직원 114명이 해외 위탁운용사에서 지원을 받아 해외 연수를 다녀온 것이 드러났다.

2017년 2월에는 퇴직예정자 3명이 기금운용 기밀정보를 전송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실장 1명을 비롯한 3명은 프로젝트 투자자료, 투자 세부계획 등의 기밀정보를 외장 하드와 개인 컴퓨터 등에 저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기금운용본부는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세부적인 경위 파악과 인사 조치 등을 하지 않아 비판받았다.

기금운용본부는 2017년 전북 전주혁신도시로 이전한 이후 인력난을 겪고 있다. 과거 기금운용본부는 최고의 증권사 매니저가 모이는 직장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전주로 이전한 후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년 국민연금은 3년차 기금운용본부 자산운용전문가 21명을 선발하려고 했으나 16명밖에 채우지 못했다.

이 같은 사건이 이어지자 국민의 노후자산 관리 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산운용은 매니저의 개인 실력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기금운용 수익률이 1%포인트만 떨어져도 고갈 시점이 5년 앞당겨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