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획을 그을 역대 최대 규모 인수합병(M&A)가 성사됐습니다. 엔비디아가 9월13일 소프트뱅크로부터 암(arm) 홀딩스를 400억달러, 약 47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는데요. 소프트뱅크가 잘 판 걸까요? 엔비디아가 잘 산 걸까요?

전통적인 방식으로 기업가치와 실적만 놓고 본다면 2016년 320억달러에 사서 400억달러에 매각한 소프트뱅크로서는 잘 판 것 같습니다. 3년 갖고 있다가 9조원 넘게 번 셈이니깐요. 엔비디아 입장에선 보유현금 및 단기투자금이 110억달러에 그치고, 부채가 80억달러인 상황을 놓고 보면, 400억달러라는 가격은 꽤나 부담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 비전을 놓고 본다면, 좀 다른 얘기가 펼쳐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엔비디아가 자율주행, 인공지능(AI)시대에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400억달러 베팅을 했는지 기대감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주가
일단 주가는 인수 확정 소식을 호재로 보고 있습니다. 589달러까지 내달렸던 엔비디아 주가는 빅테크주 거품 우려에 48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가, 암 인수 발표에 주가는 단숨에 500달러선을 돌파했습니다. 9월15일 종가는 519.64달러로 시가총액은 3206억달러에 달합니다.

야후파이낸스에 따르면 애널리스트 목표가는 최저 300달러, 최고 680달러입니다. 핀비즈에 따르면 암 인수 발표 직후 투자은행 니드햄은 최고 목표가 700달러를 써냈습니다.

특히 9월초 게임용 GPU 신제품 RTX30가 공개되자 목표가가 줄줄이 상향조정 됐는데요. 엔비디아를 긍정적으로 보는 분석가들은 게임용GPU시장에서 경쟁사인 AMD와 콘솔시장을 뺏어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반면 엔비디아 주가를 부정적으로 보는 분석가들은 현재 주가가 주가매출비율(PSR) 멀티플 기준 25배 수준으로 역사적 고점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암 인수가 암의 기업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고요.

왜 암을 살까?
애널리스트들은 엔비디아가 젠슨 황이라는 창업자가 CEO로 있으니까 암을 사지, 전문경영인 체제였다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비싸기도 하고, 잠재적인 고객사와의 갈등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미래 비전을 보고 내린 통큰 베팅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용덕 전 엔비디아코리아 대표는 "젠슨 황은 자신이 세운 원칙에 집중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자율주행, AI, 로봇 등 세상을 바꾸는 컴퓨팅 시대에서 엔비디아가 GPU 기술리더십을 가져가겠다는 원칙을 세웠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암의 저전력 CPU 기술을 가져온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엔비디아가 GPU, 즉 그래픽처리장치(Graphic Processing Unit) 칩 제조사인 반면 암은 CPU(Central Processing Unit), 중앙처리장치 칩셋 설계 업체입니다. 직접 칩을 제조하진 않고 아키텍처를 제공하고 라이선스 및 로열티를 받는 모델입니다.

쉽게 말해 GPU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스템에서 영상정보에 관련된 부분을 빠르게 처리하는 역할을 하고, CPU는 시스템 운영 전반을 담당하는 역할을 합니다.

암의 아키텍처는 단순하고 절전능력에 강점을 가진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uer) 방식으로 복잡한 명령어 세트인 인텔의 X86 CPU와는 차별화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주코노미TV] 엔비디아의 ARM 인수 효과…3가지 노림수는?
이 그림을 보면 엔비디아가 왜 암을 사려는지가 한 눈에 보이는데요. 엔비디아는 디바이스, 데이터센터 서버, 자율주행 IoT 분야에서 AI칩 제왕 자리를 노리고 있는데요. 이를 위해 자사에 부족한 부분인 모바일 네트워크, 저전력 CPU 기능을 암에서 가져와 생태계를 장악하려는 구상입니다. 엔비디아는 2023년까지 이 세 분야의 총 시장규모를 2500억달러로 내다봤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엔비디아 핵심 사업모델(BM)을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핵심 BM no.1 GPU
첫 번째 BM은 GPU입니다. 엔비디아는 21년간 PC용 게임시장에서 GPU 칩 제조사로 성장했는데요. 9월초 엔비디아가 게임용 GPU 신제품으로 Ampere 아키텍처를 도입한 PC용 GPU 'GeForce RTX 30' 시리즈를 공개했습니다. 덕분에 게임 부문이 하반기 성장 이끌 것으로 기대도 커지고 있습니다.

7월26일까지 완료된 2021년 2분기 매출은 38억6600만달러로 이중 게임이 43%, 데이터센터가 45%을 차지했습니다. 나머지는 시각화(5%), 자동차(4%), OEM&IP(3%)가 차지하고요. 그 동안 게임이 최대 매출 비중을 차지했는데 2분기 들어 처음으로 데이터센터 비중이 앞질렀습니다.

엔비디아의 강점은 그로스 마진, 총영업이익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데 있습니다. 2021 회계연도 마진은 66%로 전년의 62%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암을 통해 아직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모바일 영역에서 GPU 확대를 꾀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 GPU AI 코어와 관련된 IP를 암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판매할 계획입니다.

AI반도체 시장을 보면 스마트폰 같은 통신장비에 사용되는 AI반도체 비중이 전체 80%에 달합니다. 향후 IoT 시장을 넘보려고 해도 스마트폰 시장 진입은 필수인 셈이죠.

BM no.2 데이터센터
두 번째 BM은 데이터센터입니다. 엔비디아의 핵심 성장엔진은 데이터센터 쪽으로 넘어왔습니다. 세계 1위 반도체 거인 인텔의 시가총액을 제친 것도 2분기 데이터센터 성장세 덕분이었는데요. 엔비디아는 팬데믹 상황에서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2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50% 증가했습니다. 연초에 70억달러에 인수한 멜라녹스가 데이터센터 내에서 대규모 정보량을 운반하는 기술을 갖고 있던 게 한몫 했습니다.

엔비디아는 자사의 AI, 가속기 기술, 멜라녹스/큐뮬러스의 네트워크 기술 등을 통합한 AI 시스템용 고성능 데이터센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 데이터센터에서 부족한 부분이 CPU로 알려진 전통적인 컴퓨팅 코어였는데 암의 설계를 통해 인텔과 경쟁을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거의 모든 데이터센터는 인텔의 X86 기반으로 구축돼 있지만 최근 아마존, 마벨 테크놀로지, 후지가 암을 이용한 서버칩을 출시한 만큼 성능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TSMC도 암 기반 데이터센터 서버칩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암의 데이터센터 서버칩이 인텔의 X86 성능의 70~80%까지 올라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암은 에너지 효율적인 저전력 CPU 기술을 갖고 있는데요. 젠슨 황은 바로 이런 특징이 막대한 에너지를 요구하고, 많은 열이 발생하는 것을 피해야 하는 AI 데이터센터에 최적화된 기술이라고 봤습니다.

BM no.3 엣지
세 번째 BM은 엣지(EDGE) 컴퓨팅입니다. 자율주행, 로봇, IoT 등 AI시대 고도화된 연산이 필요한 컴퓨팅 작업을 하기 위해선 클라우등 컴퓨팅도 중앙 집중형에서 탈 중앙화가 필요한데, 이를 엣지 컴퓨팅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서 엔비디아의 GPU와 암의 AP간 시너지가 폭발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이미 자율주행 플랫폼 AGX, AI로봇플랫폼 jetson에도 암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도 ARM 기반 모바일용 AP인 테그라를 개발했지만 시장에서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력소모량이 낮고 고성능 처리가 가능한 AP가 장착된다면 핸드폰이 노트북을 대체하는 상황이 머지 않았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딥러닝 같은 AI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핵심적인 GPU와, 이 연산을 최적화할 수 있는 암의 CPU를 통해 엔비디아가 AI칩, 즉 AP가 기술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전세계 인구의 70%가 암 기반 반도체칩이 들어간 IT 기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세계 스마트폰 AP의 95%가 암의 칩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반도체업계 영향은?
엔비디아는 암 인수를 통해 칩 제조와 IP 라이선스라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사업모델을 다 하려고 하는 것인데요. 지금까지 퀄컴 빼고는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퀄컴 역시 애플 삼성 등 고객이자 경쟁사들과 수많은 소송전을 치뤘고요.

암의 주요 고객인 퀄컴, 애플, 인텔, AMD는 엔비디아와 직접 경쟁하는 칩 제조사입니다. 암의 핵심 AP 설계까지 라이선스가 가능한 퀄컴이나 애플 입장에서는 암사가 엔비디아가 더 좋은 설계를 먼저 주는 거 아니냐는 우려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죠.

애플 역시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어 맥 컴퓨터에도 암 IP를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그런데 애플이 엔비디아의 GPU칩만큼은 수년간 사용하지 않고 있거든요.

암의 고객사들이 엔비디아와는 경쟁사가 되면서 애매한 관계가 돼 버리는 것이죠.

이런 우려를 의식해 젠슨황은 공정한 플레이를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애플, 퀄컴, 브로드컴 등 암 고객사들은 이번 인수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를 하고 있진 않습니다.

위험요인 및 마무리
암 고객사들과의 잠재적인 갈등은 위험 요인으로 꼽힙니다. 암사의 칩 설계는 스마트폰 자율주행 센서에 핵심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서버와 랩탑에서도 점점 영역을 넓히고 있고요. 이렇게 암사의 고객저변이 폭넓은 것은 암사가 중립국의 포지셔닝을 잘 잡아왔기 때문입니다. 개방형으로 수백 개 고객사에게 라이선스를 개방하는 방식이었는데 엔비디아의 인수로 이런 중립국의 지위가 위협을 받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엔비디아는 암 인수 과정에서 주가 변동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암이 영국 회사인만큼 영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 동안 원천기술을 미국에 줄곧 KO패 당한 영국입장에서는 암의 원천기술을 미국에 뺏기는 거 아닌가 걱정인 것은 당연하고요. 젠슨 황이 컨퍼런스콜에서도 영국정부를 향해 걱정하지 말라고 재차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입니다. 암 차이나 법인은 중국 정부 승인도 받아야 하고요. 소요시간은 18개월로 예상하고 있고요. 승인 거부 잡음이 나올 경우 주가는 출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암을 대체하는 기술로 꼽히는 오픈소스 칩 아키텍처인 RISC-V도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2010년 미국 UC버클리대학에서 최초 개발된 것으로 2015년 공식 오픈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으며 추가적인 비용이나 로열티가 필요 없습니다. 중국, 인도나 삼성전자 하이닉스 테슬라 IBM AMD 등도 파트너로 참여해 암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Risc-V는 아직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의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설사 애플이나 퀄컴 같은 암 고객을 잃는다 해도, 엔비디아는 이번 암 인수를 감내해야 할 이유가 있는데요. 바로 자율주행차, 각종 IoT 디바이스에서 AI 기기들이 상용화됐을 때 엔비디아의 AI칩과 이에 최적화된 암의 AP가 핵심적인 플랫폼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젠슨 황이 가죽점퍼를 입고 구체적인 신제품 청사진을 발표할 때 주가에는 호재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