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본사 사옥 앞에서 장송곡을 트는 시위를 하면 안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현수막과 피켓 등을 통해 기업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에 대해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업계에서는 "목적과 무관하게 기업과 임직원들을 괴롭히기 위한 본사 앞 시위가 근절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제27민사부(재판장 이지현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현대·기아자동차가 박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집회행위 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박모씨가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 앞에서 대형 확성기를 장송곡을 틀어 과도한 소음을 발생시킨 데 대해 회사 측 청구를 인용하고, 이를 금지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회사 임직원이 장송곡에 지속 노출되면 급성 스트레스가 유발될 가능성이 높고, 피고가 주장하는 내용과 장송곡은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회사 직원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설명이다.

법원은 박씨가 시위 현장에 설치한 일부 현수막과 피켓의 문구도 문제가 있다고 결론냈다. 회사를 저질기업 또는 악질기업이라고 표현한 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법원은 피고에게 현대차와 기아차에 각각 5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피고 박모씨는 2013년부터 양재동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기업 괴롭히기 시위'가 될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이 나온다. 삼성 GS 등 대기업 본사 앞을 시위대가 점령하는 장면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미 시시비비가 가려진 사안이나 이해당사자가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책임지라"는 주장이다.

서울 서초동 삼성타운도 '장송곡 시위대'의 주요 무대다. 회사 내 어린이집을 다니는 어린이들을 봐서 욕설과 장송곡만은 자제해달라고 호소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장송곡 시위는 회사 임직원은 물론 주변에 사는 주민에게도 정신적인 고통을 준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올바른 집회 문화가 정립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