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日 아베노믹스의 빛과 그림자
‘확장적 통화정책’ ‘적극적 재정 운용’ ‘구조개혁’의 세 가지 화살로 상징되는 아베노믹스의 공과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아베노믹스는 ‘잃어버린 20년’으로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리겠다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승부수였다. 평가는 엇갈린다. 디플레이션과 저출산·고령화로 침몰하는 일본을 굴기(起)시키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이 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채 돈풀기에 급급했다는 비판도 많다. 성장 전략이 실종됐다는 뼈아픈 지적도 있다.

수출, 고용, 기업 수익의 성과는 긍정적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심화된 ‘엔고의 저주’를 벗어나 수출 경쟁력을 회복했다. 통화 공급을 늘려 엔저를 유도해 수출과 경기를 살렸다. 8년간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20% 이상 절하됐다.

주력 제조업체인 도요타, 히타치, 소니 등의 수익성이 대폭 개선됐다. 법인세율 인하, 산업경쟁력강화법 제정, 국가전략특구 도입으로 ‘몰락하는 기업 국가’ 소리를 듣던 일본 기업이 회생하는 계기가 됐다. 1989년 글로벌 기업 시가총액 1~5위를 독점하던 일본 기업이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일본주식회사’ 부활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기업의 기를 살려주는 친(親)기업·친투자 전략의 성과다. 고용시장에는 훈풍이 불었다. 대졸취업률은 98%로, 1997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 1인당 취업가능 일자리를 보여주는 유효구인배율은 작년 말 1.57배를 기록했다. 재택근무제, 한정사원제 같은 고용 유연화 정책으로 고용시장 경직성에 대처했다.

아베는 “일본에서 가장 활용도가 낮은 자원이 여성 인력”이라며 ‘우머노믹스(womenomics)’를 핵심 아젠다로 설정했다. 그러나 여성 노동 비율이 52.2%로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계약직, 임시직 비중이 높다. 기업 임원의 30%를 여성으로 채우겠다고 선언했지만 12%에 그쳤다. 내각 각료 20명 중 여성은 3명에 불과하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도 15%가 안 된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8년 성(性)격차지수는 110위에 머물렀다.

개방적 이민정책도 추진했다. 2018년 출입국관리법을 고쳐 향후 5년간 14개 업종에서 34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수용하기로 했다. 영주권 취득 요건을 완화하는 등 개방국가를 지향했지만 생산인구 부족과 고령화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완의 과제가 적지 않다. 총인구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 지방경제 활성화 정책(地方創生政策)을 통해 인구 감소와 저출산에 대응하고 있지만 성과는 제한적이다. 저출산의 주요 원인인 만혼화(晩婚化)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1인 가구 비율도 상승하고 있다. 노인인구 비율이 28%를 넘어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3대 초고령 국가 중 하나다. 2030년에는 인구 절반이 50세 이상이 될 전망이다. 도쿄가 계속 인구를 빨아들이는 일극집중 현상도 우려스럽다. 지방 소멸과 수축사회가 뉴노멀이 됐다.

재정 상황은 심각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재정 살포로 국가채무 비율이 급증했다. 정치권의 재정 포퓰리즘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국가채무 비율이 2007년 154.3%에서 2019년 225.3%로 수직 상승했다. 이자 지출을 제외한 기초재정수지도 만성 적자 상태다.

2018년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1위에 불과하다. 주요 7개국(G7) 중에서는 최하위다. 20인 이하 기업이 20%를 차지할 정도로 기업 규모가 영세하다. 인수합병(M&A)이 활발하지 않아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낮은 서비스업 생산성도 발목을 잡고 있다. 비정규직 비율이 1985년 16.4%에서 2018년 37.9%로 급증했다. 기업이 수익성 유지와 구조조정 회피 목적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한 결과다. 요시미 순야 도쿄대 교수의 주장처럼 비정규직, 여성, 외국인 근로자를 사회 전체가 착취하는 체제가 고착됐다. 새로운 주변부 계급인 언더클래스(underclass)와 신계급 사회가 출현하고 있다.

아베노믹스는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침체와 동요에서 벗어나 일본이 정상국가로 우뚝 서려는 몸부림이었다. 글로벌화와 디지털 경쟁에서 밀린 일본이 포스트 코로나 환경에서 세계 3위 경제대국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 관심이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