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환 농협은행장 "10년 뒤의 은행업 그려보라" 늘 주문하는 전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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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탐구
핀테크와 경쟁 아닌 협력이 '디지털 농협' 큰 그림
기획·전략파트서 잔뼈 굵어
프로야구단 유니콘스 인수 추진 등
찬반논란 뜨거운 난제 도맡아 처리
농협내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꼽혀
핀테크와 경쟁 아닌 협력이 '디지털 농협' 큰 그림
기획·전략파트서 잔뼈 굵어
프로야구단 유니콘스 인수 추진 등
찬반논란 뜨거운 난제 도맡아 처리
농협내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꼽혀
“뱅킹 서비스는 언제 어디서든 필요하다. 그런데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굳이 은행일 필요는 없다.”
손병환 농협은행장은 지난 7월 말 디지털 전략회의에서 임직원들에게 이 같은 ‘비관론’을 꺼냈다. 1994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개인재무관리 소프트웨어업체 퀴큰 인수를 추진하면서 “기술 발전으로 언젠가 은행이 몰락할 수 있다”고 했다. 예언은 현실이 되고 있다. 기존 대형 은행들은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 또는 핀테크(금융기술) 기업에 야금야금 금융 서비스 영역을 빼앗기고 있다.
농협은행은 손 행장이 취임한 3월 이후 ‘디지털 시계’를 분주히 돌리고 있다. 비관적 전망을 긍정으로 돌파하려는 전략이다. 손 행장이 그리는 그림은 경쟁보다 협력이다. 농협은행은 다른 은행처럼 새로운 플랫폼 서비스를 시작하고, 간편결제 기능을 뱅킹 앱에 붙이는 대신 다양한 핀테크업체와 제휴를 맺고 있다. 핀테크 앱 사용자에게 농협은행의 본질적 서비스인 예금, 대출, 카드를 쓰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대만 TMSC와 비슷한 방식이다.
농협중앙회 기획·전략부문에서 오래 근무했다. 농협중앙회 종합조정실을 거쳐 기획조정실 팀장으로 발령났다. 손 행장은 기조실에서 일하던 2006년과 2007년을 인생 최대의 위기이자, 가장 성장한 시기로 꼽는다. 여차하다간 ‘목이 달아날 법도 한’ 대형 프로젝트를 여럿 맡았기 때문이다.
해체를 선언한 프로야구단 유니콘스를 인수하라는 ‘특명’이 그중 하나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8개이던 야구단이 7개로 줄면 ‘홀수 팀 체제’가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농민단체의 반발을 돌려세우고, 농림축산식품부와 조율해야 하는 등 과제가 많았다. 언론 대응도 도맡아야 했다.
서울로 연고지를 바꾸고, 신인지명권을 추가로 받는 조건 등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인수는 무산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되면서 여론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힘들어하는 시기에 왜 굳이 프로야구를…”이라는 비판을 넘어서지 못했다.
손 행장에겐 아쉬움이 남았다. 야구단 인수는 도시지역과 청년층에 다가갈 기회였다. 당시 인수가격은 현재 야구단 가치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수준이기도 했다. 손 행장이 범(汎)농협 내부의 ‘전략가’로 꼽히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다. 합작사 설립 프로젝트 등 풀기 힘든 난제가 그에게 잇달아 주어졌다.
그도 IT엔 문외한에 가까웠지만 과감히 손을 들었다. “1년 안에 사고를 반 이하로, 그다음엔 그 반으로 줄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발령을 받자마자 IT 보안 전반을 점검했다.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개편에 공들였다.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보안사고가 극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음 과제는 핀테크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직원들에게 “5년, 10년 뒤 은행업의 미래를 그려보라”고 끊임없이 주문했다. 이대로라면 데이터사업을 애플과 구글 등 플랫폼기업에 빼앗긴 통신회사와 비슷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규모 소비자를 안고 있는 유통사와 SNS업체 등이 금융업에 손을 댈 게 뻔했다.
손 행장은 상황이 비관적이지만 불행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리스크 관리와 여·수신, 기업금융과 같은 은행업의 본질은 남아 있다고 판단했다. IT업체와 경쟁하기보다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농협만의 디지털 금융전략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2015년 금융권 최초로 핀테크기업 육성 조직인 NH핀테크혁신센터를 설립했다. 수수료 수익이 줄 것이라는 내부 반대를 뚫고 오픈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도 도입했다. 은행 서비스 내 연결, 이체 기능을 핀테크기업 모두에 표준화된 방식으로 공개했다. 간편뱅킹 앱 올원뱅크 개발도 이끌었다. 농협을 바라보는 내·외부 평가가 180도 달라졌다. 문제 해결을 넘어 “농협이 IT, 디지털을 잘한다”는 말이 금융권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손 행장은 취임 직후인 5월 간편송금 앱 토스와 하이브리드 간편결제 서비스 관련 제휴를 맺었다. 핀테크사와의 상생의 중요성은 더 올라갔다. 마이데이터사업(본인신용정보관리업)을 준비하기 위한 데이터 조직과 자산관리(WM)본부를 정비하는 작업도 본격화했다. 5년, 10년 뒤를 준비하기 위한 포석이다.
부서장 이상이 돼야 참석하던 행장 보고에는 차장 과장을 참여시켰다. 손 행장은 최근 재무관리단 소속 한 직원의 자산부채관리(ALM) 보고를 받은 뒤 ‘행장석에 앉아보라’고 권해 금융권 안팎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수한 직원이라면 행장의 눈으로 회사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손 행장은 아직 농협은행에 특유의 보수적 기업문화가 남아 있고, 조직이 스스로 설정한 한계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는 “농협은행의 장점은 뭉근한 추진력과 오랫동안 쌓인 리스크 관리역량”이라며 “임기 동안 직원들이 이런 역량을 제한 없이 발휘할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 손병환 은행장
△1962년 경남 진주 출생
△1981년 진주고 졸업
△1988년 서울대 농업교육학과 졸업
△1990년 농협중앙회 입사
△2005년 기획조정실 팀장
△2015년 스마트금융부장
△2016년 농협중앙회 기획실 실장
△2019년 농협금융지주 사업전략부문장
△2020년 경영기획부문장
△2020년 3월~ 농협은행장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손병환 농협은행장은 지난 7월 말 디지털 전략회의에서 임직원들에게 이 같은 ‘비관론’을 꺼냈다. 1994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개인재무관리 소프트웨어업체 퀴큰 인수를 추진하면서 “기술 발전으로 언젠가 은행이 몰락할 수 있다”고 했다. 예언은 현실이 되고 있다. 기존 대형 은행들은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 또는 핀테크(금융기술) 기업에 야금야금 금융 서비스 영역을 빼앗기고 있다.
농협은행은 손 행장이 취임한 3월 이후 ‘디지털 시계’를 분주히 돌리고 있다. 비관적 전망을 긍정으로 돌파하려는 전략이다. 손 행장이 그리는 그림은 경쟁보다 협력이다. 농협은행은 다른 은행처럼 새로운 플랫폼 서비스를 시작하고, 간편결제 기능을 뱅킹 앱에 붙이는 대신 다양한 핀테크업체와 제휴를 맺고 있다. 핀테크 앱 사용자에게 농협은행의 본질적 서비스인 예금, 대출, 카드를 쓰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대만 TMSC와 비슷한 방식이다.
궂은일 마다않는 전략가
손 행장은 1988년 서울대 농업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무역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90년 농협중앙회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학창시절 선후배 관계와 전공, 적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농협이 낫다는 현실적 판단이었다.농협중앙회 기획·전략부문에서 오래 근무했다. 농협중앙회 종합조정실을 거쳐 기획조정실 팀장으로 발령났다. 손 행장은 기조실에서 일하던 2006년과 2007년을 인생 최대의 위기이자, 가장 성장한 시기로 꼽는다. 여차하다간 ‘목이 달아날 법도 한’ 대형 프로젝트를 여럿 맡았기 때문이다.
해체를 선언한 프로야구단 유니콘스를 인수하라는 ‘특명’이 그중 하나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8개이던 야구단이 7개로 줄면 ‘홀수 팀 체제’가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농민단체의 반발을 돌려세우고, 농림축산식품부와 조율해야 하는 등 과제가 많았다. 언론 대응도 도맡아야 했다.
서울로 연고지를 바꾸고, 신인지명권을 추가로 받는 조건 등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인수는 무산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되면서 여론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힘들어하는 시기에 왜 굳이 프로야구를…”이라는 비판을 넘어서지 못했다.
손 행장에겐 아쉬움이 남았다. 야구단 인수는 도시지역과 청년층에 다가갈 기회였다. 당시 인수가격은 현재 야구단 가치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수준이기도 했다. 손 행장이 범(汎)농협 내부의 ‘전략가’로 꼽히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다. 합작사 설립 프로젝트 등 풀기 힘든 난제가 그에게 잇달아 주어졌다.
디지털·IT 궤도 위로 올라선 농협
2011년 첫 지점장 발령을 받고 4년여간 전국을 돌았다. 당시 농협은행은 위기였다. 2011년 전산망 중단 사태 이후 보안사고가 잇따랐다. 2014년엔 피싱 조직이 고객 돈을 빼가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정보기술(IT) 서비스와 보안을 총괄하는 스마트금융부장 자리엔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했다.그도 IT엔 문외한에 가까웠지만 과감히 손을 들었다. “1년 안에 사고를 반 이하로, 그다음엔 그 반으로 줄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발령을 받자마자 IT 보안 전반을 점검했다.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개편에 공들였다.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보안사고가 극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음 과제는 핀테크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직원들에게 “5년, 10년 뒤 은행업의 미래를 그려보라”고 끊임없이 주문했다. 이대로라면 데이터사업을 애플과 구글 등 플랫폼기업에 빼앗긴 통신회사와 비슷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규모 소비자를 안고 있는 유통사와 SNS업체 등이 금융업에 손을 댈 게 뻔했다.
손 행장은 상황이 비관적이지만 불행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리스크 관리와 여·수신, 기업금융과 같은 은행업의 본질은 남아 있다고 판단했다. IT업체와 경쟁하기보다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농협만의 디지털 금융전략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2015년 금융권 최초로 핀테크기업 육성 조직인 NH핀테크혁신센터를 설립했다. 수수료 수익이 줄 것이라는 내부 반대를 뚫고 오픈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도 도입했다. 은행 서비스 내 연결, 이체 기능을 핀테크기업 모두에 표준화된 방식으로 공개했다. 간편뱅킹 앱 올원뱅크 개발도 이끌었다. 농협을 바라보는 내·외부 평가가 180도 달라졌다. 문제 해결을 넘어 “농협이 IT, 디지털을 잘한다”는 말이 금융권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5년, 10년 뒤 디지털 포석
그가 올초 농협은행장 자리에 오르게 된 건 농협중앙회 농협금융지주 농협은행 등 주요 조직에서 기획·전략과 글로벌, 디지털 업무를 두루 맡은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손 행장은 취임 직후인 5월 간편송금 앱 토스와 하이브리드 간편결제 서비스 관련 제휴를 맺었다. 핀테크사와의 상생의 중요성은 더 올라갔다. 마이데이터사업(본인신용정보관리업)을 준비하기 위한 데이터 조직과 자산관리(WM)본부를 정비하는 작업도 본격화했다. 5년, 10년 뒤를 준비하기 위한 포석이다.
부서장 이상이 돼야 참석하던 행장 보고에는 차장 과장을 참여시켰다. 손 행장은 최근 재무관리단 소속 한 직원의 자산부채관리(ALM) 보고를 받은 뒤 ‘행장석에 앉아보라’고 권해 금융권 안팎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수한 직원이라면 행장의 눈으로 회사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손 행장은 아직 농협은행에 특유의 보수적 기업문화가 남아 있고, 조직이 스스로 설정한 한계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는 “농협은행의 장점은 뭉근한 추진력과 오랫동안 쌓인 리스크 관리역량”이라며 “임기 동안 직원들이 이런 역량을 제한 없이 발휘할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 손병환 은행장
△1962년 경남 진주 출생
△1981년 진주고 졸업
△1988년 서울대 농업교육학과 졸업
△1990년 농협중앙회 입사
△2005년 기획조정실 팀장
△2015년 스마트금융부장
△2016년 농협중앙회 기획실 실장
△2019년 농협금융지주 사업전략부문장
△2020년 경영기획부문장
△2020년 3월~ 농협은행장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