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꼽혀온 캘리포니아가 쌓이는 악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 달여 전 시작된 산불이 서울 면적의 23배를 태우고도 멈출 줄 모른다. 사상 최악으로 치닫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주 캘리포니아를 방문했다. 그런 대통령에게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주지사가 대놓고 결례를 저질렀다. 현직 대통령이 방문하면 비행기 앞까지 마중 나가는 의전 관례를 무시하고 터미널 응접실에서 ‘접견’하듯 만났다.

뉴섬의 ‘까칠 응대’에는 나름의 메시지가 담겼다. 산불 확산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부실한 산림관리 탓”이라고 지적한 데 대한 앙금이었다. 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 꿈을 키우고 있는 뉴섬이기에 그냥 넘길 수 없었을 것이다. 산불이 사상 최악으로 번진 원인을 한두 가지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고, 그에게도 할 말이 없지 않을 터다.

하지만 최근 캘리포니아 주민들을 잇달아 덮치고 있는 ‘정전 대란(大亂)’은 얘기가 다르다. 지난달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각지의 330만여 가구가 난데없는 순환정전 날벼락을 맞았다. 주 전력당국은 ‘폭염에 따른 전력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뉴섬 주지사는 “전력당국이 제대로 대비하지 못해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며 길길이 뛰었지만, 그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민주당 지도부가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최근 빈발하고 있는 정전 사태는 민주당 지도부가 ‘친환경’을 내걸고 캘리포니아 내 원자력 및 천연가스 발전소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쪽으로 급선회하면서 빚어진 ‘인재(人災)’다. 주 행정부와 의회 상·하원 다수의석을 꿰찬 민주당은 2014년부터 4년 동안에만 천연가스발전을 21% 줄이고 재생에너지 의존도를 크게 높였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공급 비중을 60%로 높이고 2045년부터는 완전히 재생에너지만 쓴다는 목표를 법제화했다. 한 기(基) 남은 원전은 2025년 폐쇄를 못 박았다.

캘리포니아가 아무리 햇볕이 좋은 지역이라고 해도 태양광발전이 밤에 작동할 수는 없다. 풍력도 기상상황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 걸 염두에 두고 에너지 전환 정책을 폈어야 했는데 환경원리주의 이념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가 전력 수요가 몰릴 때마다 되풀이되는 블랙아웃(대정전)이다. 다급해진 주 정부가 다른 주에서 평소 가격의 10배를 주고 전력을 긴급 구매하는 사태가 반복된다. 녹색(친환경)원리주의가 빚은 평지풍파임을 빗대는 ‘그린아웃(green + blackout)’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전력 문제는 캘리포니아를 덮친 ‘좌클릭 정치 풍랑’의 일부일 뿐이다. ‘친환경’에 매몰된 부실 치수(治水)로 조금만 가뭄이 와도 심각한 물 부족에 시달린다. 물 값이 50개 주 가운데 세 번째로 높아지면서 미국에서 소비되는 브로콜리의 90%, 마늘의 95%, 과일과 견과류의 3분의 2를 생산하는 농가의 비용 부담을 키웠다. 세율도 야금야금 올리고 있다. 소득세와 판매세는 50개 주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취약계층을 보호하겠다는 정책들이 역효과를 내면서 저소득층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승차공유회사인 우버와 리프트 운전기사 등 ‘긱 이코노미(특정 소속에 얽매이지 않는 자율근로 경제)’ 근로자들에게 노조 결성 허용을 강행해 고용유연성을 떨어뜨리고 대량 실직을 초래하는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캘리포니아 드림’이라는 말까지 탄생시켰던 곳의 허무한 반전(反轉)에 민주당 성향 언론들도 고개를 젓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캘리포니아가 종말적(apocalyptic)으로 변하고 있다”는 주민들의 한탄을 담은 기사를 게재했다. 실리콘밸리 기업가 앤디 케슬러는 월스트리트저널 칼럼(California is coming for you)에서 캘리포니아가 20년 넘게 민주당 지배하에 놓이면서 쇠락해가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주 의회는 1997년, 주지사는 2011년(공화당 소속임에도 민주당 노선을 밟은 슈워제네거 시절을 포함하면 1999년)부터 민주당 손에 넘어간 결과라는 진단이다. 한국에서도 ‘민주당 20년 집권론’이 흘러나오는 판이어서 더 눈길이 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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