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原電 안전을 문외한에게 맡기겠다는 문재인 정부
“정말 뜬금없네요. 원자력발전소 안전 검증은 고도로 훈련된 전문인력이 기술적으로 판단해야 할 분야인데….”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3일 ‘제3차 원자력 안전 종합계획’을 마련할 국민 참여단 200명을 모집하겠다고 발표하자 원자력 학계에서 나온 반응이다. 원안위는 한국수력원자력이 가동 중인 전국 24개 원전과 각종 방사선 취급기관 등에 대한 안전을 총괄하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이다. 원자력 안전 종합계획은 2022년부터 5년간 원안위 정책의 밑바탕이 되는 ‘최상위’ 법정계획이다.

원안위는 무작위 추출한 80명 등 일반 국민 120명과 지역주민·직능단체·학회 등 관계자 50명, 국민 기자단 30명을 합쳐 국민 참여단 200명을 구성하겠다고 했다. 원자력 안전 대계(大計)를 결정할 200명 가운데 75%(150명) 이상을 ‘원전 문외한’으로 채우겠다는 뜻이다. 국민 기자단엔 학생도 포함된다. 학계 등 전문가들이 아연실색한 이유다.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 의견을 듣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발전소 주변 주민 등은 당연히 참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원전과 같은 거대 복잡계 과학 설비의 운영과 안전 검증은 일반 국민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발전소의 부속품 또는 계통 한 곳의 안전 점검만 해도 문서 수백~수천 쪽의 기술적 검토가 필요하다. 지난해 말 원안위에서 심의 의결된 신고리 3·4호기, 한울 1·2호기 등에 대한 운영변경 허가 건 등이 대표적이다. 해당 문서를 보면 전문가가 아니면 해석이 어려운 내용이 많다.

앞서 2012년 수립된 1차, 2016년 수립된 2차 종합계획만 해도 이렇게까지 전문가를 배제하진 않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수립된 1차 계획은 전문가들이 주도했다. 원자로 격납 용기의 벤트(환풍) 시스템 강화, 소듐고속냉각로(SFR)·초고온가스로(VHTR) 등 4세대 미래형 원자로 구축, 수소가스 폭발 방지대책 강화 등 기술적 보완책이 주를 이뤘다. 2차 계획도 마찬가지였다. 학계와 원자력안전·통제기술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수원 등 산·학·연 전문가가 안을 마련했다.

이미 원전산업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로 황폐화됐다. 한때 이적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최근 공공의대 설립안을 두고 ‘의사 파업과 한국 사회의 운명’이란 글을 온라인에 썼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사회를 지탱하는 주체인 전문가를 끌어내리고, 시민단체로 해당 분야를 접수한다”고 적었다.

대표적인 예로 탈원전을 들었다. 그러면서 시민단체가 ‘접수’하지 못한 마지막 영역으로 의학계를 거론했다. 이 글은 각계에서 공감을 얻었다. 이미 접수돼 파괴된 원전산업 생태계처럼 기술 생태계도 접수될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