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정치학》에서 일종의 인공지능(AI)을 지닌 ‘자동 노예’에 대한 판타지를 꿈꿨다. 그는 “가정을 운영하는 사람이 하인을 둘 필요가 없거나 주인에게 노예가 없어도 괜찮은 경우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며 “바로 다이달로스(그리스 신화 속 전설적 장인)가 만든 동상이나 헤파이스토스(대장장이 신)가 제작한 제기(祭器)들처럼 생명이 없는 도구들이 명령을 받거나 주인의 뜻을 스스로 헤아려 일하는 경우일 것”이라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자신이 머릿속에서 그린 자동 기계들이 작동하는 모습을 두고는 “그것들은 스스로 작동해서 올림포스산 위에 있는 신들의 회의 장소로 들어갔다”라고 읊었다. 헤라 여신이 천마를 몰고 올림포스 신전을 들어설 때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장면을 그린 호메로스 《일리아스》의 한 구절에 빗댔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꿈꿨던 공상이 현실화하는 장면을 전하는 뉴스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어제 새로 개발한 배터리 기술과 생산계획 등을 공개하는 ‘배터리데이’행사에서 “한 달가량 뒤에 완전 자율주행차를 선보이겠다”고 밝혀 관심을 모은다. 완전 자율주행차를 선보이는 계획을 두고 머스크는 ‘놀랄 만한(amazing)’ 일로 칭하기도 했다.
자동 브레이크나 속도 조절 같은 낮은 단계 자율주행(미국 자동차공학회 기준 레벨 1·2), 고속도로나 시내 도로에서 차량 스스로 움직이는 조건부 자율주행(레벨3) 수준이 아니라 운전자의 존재 자체가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레벨 4·5) 시대가 임박했음을 선언한 것이다. 마차에서 말을 배제하며 등장했던 자동차가 이제 운전자마저 불필요해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머스크가 테슬라의 주요 수익원이 될 수 있는 2만5000달러(약 2900만원) 수준의 저가 전기차 출시 시기를 2023년으로 미룬 탓에 테슬라 주가는 뉴욕 증시 시간외 거래에서 적잖게 하락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완전 자율주행차의 등장을 예고한 파장은 작지 않다. 2300여 년 전 자동기계를 꿈꿨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자동차 스스로 길을 찾고, 탑승자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옮겨주는 오늘날 현실을 본다면 과연 어떤 감탄사를 내뱉을지 궁금해진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