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달러(약 117억원). 올 들어 국내 한 중소기업이 미국에 비데를 수출해 벌어들인 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미국 마트 곳곳에서 벌어진 ‘휴지 사재기’ 사태 이후 비데에 관심을 보이는 현지 소비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수출 대박’을 터뜨린 이 회사는 비데 전문기업 아이젠이다. 2003년 설립한 뒤 국내에서 유일하게 의료기기로 인증받은 비데를 생산하고 있다. 제조업자개발생산(ODM)을 주로 하며 국내 10여 개 비데 브랜드가 이 회사 제품을 판매한다. 지난해 매출은 300억원. 올해는 미국 수출 증가에 힘입어 연매출 36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기존에 없는 관장기능 ‘승부수’

아이젠은 2002년 몇몇 연구원이 모여 설립한 의료용 비데회사에서 출발했다. 막상 제품을 내놨지만 시장 반응이 없어 폐업까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이 회사 비데의 효능을 알아본 외식사업가 유병기 씨가 회사를 통째로 인수해 2003년 지금의 사명으로 정식 법인을 설립했다.

아이젠은 기존에 없던 ‘관장 기능’으로 소비자를 확보했다. 다량의 물줄기로 더욱 부드럽게 배변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이다. 항문 치료 기능이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2009년 의료기기 인증을 획득했다. 국내에서 이 인증을 받은 비데회사는 아이젠이 유일하다.

이 비데로 효과를 본 사례가 알려지면서 고객사는 빠르게 늘었다. 내로라하는 국내 가전기업들이 아이젠의 비데를 선택했다.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같은 건설사도 자사 모델하우스에 이 회사 비데를 들였다. 2015년 226억원이던 연매출은 지난해 말 300억원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아이젠 전체 매출 가운데 해외 비중이 30%에 달한다. 미국 중국 유럽 등 30여 개 국가가 아이젠 제품을 수입한다. 기존 비데 브랜드의 상표를 달고 나가는 일이 많지만 아이젠 자체상표로 나가는 국가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이다.

아이젠은 중국 현지에서 뛰어난 기능을 지닌 프리미엄 비데로 평가받는다. 중국 내 매출이 많은 비데 브랜드 중 ‘톱10’에 들기도 했다. 10개 회사 중 해외 기업은 아이젠뿐이다. 유명재 아이젠 부사장(사진)은 “한국에 관광하러 오는 중국인 사이에서 ‘선물 필수품’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독자 브랜드로 시장 공략 강화

올 들어 아이젠은 하나의 전환점을 맞았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불안이 막 세계를 덮치던 무렵 “감염을 막기 위해 착용하는 마스크에 휴지와 같은 펄프가 쓰이기 때문에 곧 휴지 생산이 끊길 수 있다”는 가짜뉴스가 퍼져 미국에서 휴지 사재기 사태가 일어난 게 계기였다. 이후 휴지 사용을 대폭 줄일 수 있는 비데를 찾는 미국 소비자가 늘었다. 아이젠은 이 혜택을 제대로 봤다. 올 들어 미국 수출이 전년 동기보다 80% 늘었다.

유 부사장은 2018년부터 아이젠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2017년 10월 초대 최고경영자(CEO)이자 유 부사장의 아버지인 유병기 전 대표가 사망하면서다. 미국 뉴욕대를 졸업한 뒤 외국계 증권사에서 근무한 유 부사장은 ‘해외통’ 이력을 살려 미국 등의 해외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자체브랜드 강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오는 4분기 홈쇼핑을 통해 론칭하는 ‘아이젠 대장세척장치’가 그 시작이다. 의료 성능을 강조한 관장비데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