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에서 상권으로 나가는 정문 앞 횡단보도는 초록불 신호를 기다리는 대학생들이 꽉 차 있던 장소였지만 그곳마저 인적이 드물 정도였다. 축제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걸려야 할 자리에는 발열검진소를 안내하는 현수막이 대신하고 있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바꿔놓은 풍경이다.
올해는 유독 대학 입학 후 신입생들이 군 입대하는 케이스가 많다. 수도권 4년제 대학에 입학한 경기도 양주 거주 김모씨(20)는 다음달 입대를 앞두고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계속돼 대학 동기들과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 병역부터 빨리 해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선배, 동기들과 캠퍼스 생활을 누리는 벚꽃 낭만은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군대에 가게 돼 아쉽다. 코로나 때문에 마치 끌려가듯 군대에 가는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 신입생들은 기대했던 대학생활을 누리지 못해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는 "(대학생활을) 코로나 때문에 시작도 못해봤다. 진짜 속상하고 우울하다", "코로나 안정되고 나면 집단상담 받아보는 게 어떠냐" "3수 끝에 입학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학교생활도 못했다" 등 푸념 섞인 글이 여럿 올라왔다.
최유리 중앙대 학생생활상담센터 전문연구원은 "가족이나 친구관계등을 통해 풀릴 수 있었던 기존 우울감이 코로나19라는 변수를 만나 쉽게 풀리지 않는 사례들이 종종 발견된다"며 "마음챙김이나 자살예방교육, 집단상담 같은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는 게 '코로나 블루(우울증)'를 극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신입생뿐만이 아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거나 졸업 후 직장을 구하는 20대 중후반 취업준비생들도 코로나19로 무기력감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다. 광주 소재 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 중인 서모씨(27)는 회사 성격별로 작성한 자기소개서만 벌써 10장이 넘는다고 전했다. 그는 "회사마다 인재상이 달라 거기에 맞춰 자소서를 쓰고 있다. 그것만 들여다보면 내가 지금 뭘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종식되려면 몇년 걸릴 수 있다는 기사들만 보면 더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렇잖아도 불안한 취업시장에 코로나19 악재가 겹친 탓에 기업들이 채용문을 좁히면서 구직을 포기하는 취준생들이 늘었다. 최근 구직플랫폼 잡코리아가 신입 구직자 1148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5.2%가 올 하반기 구직을 포기했다. 포기 이유로는 63.8%가 '코로나19로 구직시장 경기가 좋지 않아서'를 꼽았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직장인들 역시 늘어나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이달 발표한 '코로나19와 직장생활 변화 3차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40%가 코로나19로 불안감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앞선 4월 같은 조사에서 이 비율은 25%, 6월 조사에선 32%였지만 갈수록 수치도 올라가고 있다. 비대면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도 코로나19로 허전함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올 추석에는 떨어져 사는 자식들 상당수가 고향 방문 계획을 접었다.
노인들의 소통 창구 역할을 했던 경로당, 마을회관 등 커뮤니티 시설까지 문을 닫으면서 사실상 대인관계가 단절됐다. 경로당을 자주 찾곤 했던 김모씨(87·여)는 "회관에 모여 벗들과 사는 얘기 나누는 게 낙인데 심심해서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일부 지자체와 기관들은 우울증에 빠질 위험이 있는 독거노인 등에게 맞춤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노인들이 취미생활을 즐길수 있겠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코로나 블루 확산을 막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용 한국심리상담센터 대표는 "코로나 블루와 관련된 상담 문의가 최근 많이 들어온다. 코로나19로 발생한 우울감이 가족관계·친구관계까지 번질 수 있어 간과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코로나가 종식될 것이란 희망을 갖고 계획했던 삶을 재정비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혼자만의 공간에 갇히기보다는 운동 등 취미생활을 통해 스트레스를 적절히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기운 한경닷컴 기자 kkw102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