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국의 '기술굴기'가 어려운 이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 경제 주도권을 둘러싼 각국의 신경전이 날카롭다. 성장 동력 창출이 요긴한 상황에서 인공지능(AI) 및 통신 시스템과 자동차 영역을 포함한 대체 에너지 연관 산업의 혁명적 변화가 앞당겨질 것이다. 핵심 산업 기술의 확보가 한 국가의 경제적 위상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특히 미·중 갈등과 보호주의 확산으로 인한 경쟁 격화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제 판도를 초래할 수 있다.

오는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을 전후해 미국과 중국이 갈등 봉합 수순을 밟더라도 2025년까지 30% 수준인 핵심 부품 자급률을 70% 선으로 끌어올리려는 중국의 전략 목표 달성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화웨이 등 중국 유력 정보통신 기업에 대한 미국의 제재 조치도 중국의 ‘기술굴기(起)’ 가능성에 대응한 기술 주도권 유지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특이한 점은 처음부터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고성장 시기에 정부와 기업이 주로 해외 자본을 차입해 산업 발전을 뒷받침했다. 중국은 경제특구 건설과 지리적 개방 정책을 통해 홍콩 및 대만 자본과 다국적 기업의 직접 투자를 유도했다. 이들의 기술과 자본, 경영 노하우가 중국의 수출 대국화를 이끌었다. FDI는 단시일 내에 첨단 제품 수출을 가능케 해 막대한 무역 흑자와 외환보유액 증가에 기여했으나, 중국 경제의 이중 구조 심화라는 부작용도 낳았다.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외자와 연관된 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해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변신하는 과정의 주역이 됐다. 하지만 중국의 사회 통제 및 관리 체계와 낙후된 지역 경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방대한 지방 기업은 정부의 보호막에 의존해왔다. 화웨이도 미국의 직접 제재가 강화됐지만 올 상반기 영업 실적과 휴대전화 출하량은 오히려 24%씩 증가했다. 미국에 반발한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오히려 높은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국가주의를 부추기는 시진핑 시대에 중국 소비자의 반미(反美) ‘애국심’도 한몫했다.

정작 기업 관리 방식이나 정부와의 관계 개혁을 위한 중국의 가시적 노력은 부족하다. 기업 관리의 불투명성과 정부 주도의 왜곡된 시장 구조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20년이 된 아직도 서방세계가 중국에 시장경제지위(MES) 부여를 망설이고, 미국이 서슴없이 기술 제재의 칼을 빼든 근거가 됐다.

중국의 ‘기술 생태계’ 역시 한계성이 두드러진다. 그동안 빠른 세계 시장 진입을 위해 중국은 첨단 산업 기술을 외자 기업이나 특허 및 핵심 부품 수입에 의존했다. 정치 기류 변화에 편승해야 생존이 가능한 기업 경영진은 보여주기식의 단기 실적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장기적 안목의 연구개발(R&D)은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기업이 알려진 해외 브랜드의 인수합병에 그리도 열심인 이유도 정부 눈치 보기의 일환이다. 국가 ‘체면’ 살리기가 기업 효율성에 앞선다.

지방정부는 재정 수입 확보를 위해 역내 기업을 보호하고 타 지역 기업에 대한 시장 진입 장벽을 구축한다. 선도 기업이 확보한 기술을 전국의 국내 연관 산업에 확산시키기 어려운 이유다. 무역 통계에 나타나는 중국의 발 빠른 첨단 제품 수출 증가는 외자 기업의 생산 항목 조정에 따른 표면적 현상인 경우가 많다.

중국 정부가 산업 및 기업 제도 개선보다 미국의 대(對)중국 제재에 대한 정치적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소비자의 ‘애국심’과 보호 정책으로 기업을 감싼다면 산업 기술 체계의 구조적 결함을 개선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이 정말 필요한 것은 적대적 외부 환경을 전제로 한 국가주의적 기술굴기가 아니다. 스스로 지역 격차의 이중 경제구조를 타파하고 건전한 기술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제도와 투명한 기업 관리 방식을 정착시키는 것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