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이후로 발표 미뤄진 '재정준칙'…해외는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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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9월 중으로 공언했던 재정준칙 발표를 추석연휴 이후로 미뤘다. 현재 검토 중인 방안대로면 '있으나 마나'한 재정준칙을 만들 수 있다는 정부 안팎의 우려 때문이다. 여당과의 의견 조율도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재정준칙은 대체 무엇일까. 해외에서는 어떻게 재정준칙을 운용하고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34개국이 도입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90개 넘는 국가가 재정준칙을 도입해 재정건전성을 지키고 있다. 한국은 2016년 정부 입법으로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재정준칙은 기준으로 삼는 지표에 따라 4가지 유형이 대표적이다.
첫째는 '재정수지준칙'으로, 정부 수입과 지출 간 차이를 의미하는 '수지'의 적자를 기준으로 목표치를 설정해 관리한다. 둘째는 '채무준칙'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셋째는 '지출준칙'을 통해 정부 지출의 규모나 증가율, GDP 대비 비중을 제한하는 방법이 있다. 네번째로 '수입준칙'은 재정수입의 상한 또는 하한을 설정해 재정수입징수 증대와 과도한 조세부담을 막는다.
이밖에 정부가 국내자본이나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을 금지하거나 수입·지출 대비 차입 비율을 제한하는 '차입준칙' 등의 방식도 있다.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에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나라살림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특히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서 정부 지출이 급격히 늘었다. 반면 경기둔화로 세수는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나가는 돈은 많고 들어오는 돈은 한계가 있으니 빚이 쌓일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4차 추경 기준 올해 국가채무는 846조9000억원으로 GDP 대비 채무비율이 43.9%에 달한다. 역대 최대치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역시 118조6000억원(GDP 대비 비율은 -6.1%)로 사상 최악의 숫자를 기록했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정부 총수입-총지출)에서 4대 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것으로 '나라살림이 탄탄한지'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지표다.
내년 정부 예산안은 555조8000억원이다. 물론 10여년 전이긴 하지만 2008년 강만수 당시 기재부 장관이 "제가 아마 과거 왕조시대의 호조판서를 포함해서 역대 재무 책임자 중 가장 돈을 많이 써 본 사람일 것이다. 원없이 돈을 썼다"고 말했을 때 정부 예산은 257조원 수준이었다.
이에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2020년도 제4차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재정의 효율성 제고로 '재정확대→경제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다면 세율을 올리지 않더라도 세입이 확대될 것"이라며 "효율적이지 못한 사업을 과감하게 정비할 수 있는 지출 구조조정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강력하게 추진할 재정준칙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역시 내년도 예산안 관련 브리핑에서 "어떠한 형태로든지 우리나라에도 재정준칙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9월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었다.
문제는 코로나19 비상상황이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는 재해·경기침체 시 재정준칙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여기에 △재정준칙의 구체적 지표를 법(국가재정법)이 아닌 시행령에 △재정수지 적자 등을 3~5년 평균치로 관리하는 방안 등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맹탕 준칙'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독일은 가장 엄격한 재정준칙을 가진 나라로 꼽힌다. 헌법에 못박았다. 부채의 신규발행을 GDP 대비 0.35%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자연재해나 국가통제를 벗어나 재정상황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즉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에서는 예외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1990년 예산집행법을 통해 '페이고(pay-go)' 원칙을 도입했다. 비용이 수반되는 정책을 세울 때 재원 확보 방안을 반드시 마련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나라살림에 '외상'을 쌓지 말라는 것이다. 2002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했지만 2009년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11%까지 치솟자 2010년 소멸시효 없는 페이고법을 재도입했다.
유럽연합(EU)는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EU 회원국은 ‘GDP 대비 국가채무 60%, 재정적자 3%’를 지키도록 정하고 있다. 1993년 발효 당시 유로 회원국의 재정적자 비율은 5.8%에 달했다. 재정준칙 도입 이후 재정건전화 정책을 적극 추진해 1997년 2.7%까지 낮아졌다. 코로나19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재정준칙 면책조항을 적용 허용하지 않았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재정준칙이 뭔가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등 재정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정한 규범이다. '재정의 마지노선' 역할을 한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34개국이 도입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90개 넘는 국가가 재정준칙을 도입해 재정건전성을 지키고 있다. 한국은 2016년 정부 입법으로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재정준칙은 기준으로 삼는 지표에 따라 4가지 유형이 대표적이다.
첫째는 '재정수지준칙'으로, 정부 수입과 지출 간 차이를 의미하는 '수지'의 적자를 기준으로 목표치를 설정해 관리한다. 둘째는 '채무준칙'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셋째는 '지출준칙'을 통해 정부 지출의 규모나 증가율, GDP 대비 비중을 제한하는 방법이 있다. 네번째로 '수입준칙'은 재정수입의 상한 또는 하한을 설정해 재정수입징수 증대와 과도한 조세부담을 막는다.
이밖에 정부가 국내자본이나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을 금지하거나 수입·지출 대비 차입 비율을 제한하는 '차입준칙' 등의 방식도 있다.
나라살림 어떻길래
나라살림이 어떤 상황이기에 한국도 재정준칙 도입이 필요한 것일까.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에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나라살림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특히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서 정부 지출이 급격히 늘었다. 반면 경기둔화로 세수는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나가는 돈은 많고 들어오는 돈은 한계가 있으니 빚이 쌓일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4차 추경 기준 올해 국가채무는 846조9000억원으로 GDP 대비 채무비율이 43.9%에 달한다. 역대 최대치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역시 118조6000억원(GDP 대비 비율은 -6.1%)로 사상 최악의 숫자를 기록했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정부 총수입-총지출)에서 4대 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것으로 '나라살림이 탄탄한지'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지표다.
내년 정부 예산안은 555조8000억원이다. 물론 10여년 전이긴 하지만 2008년 강만수 당시 기재부 장관이 "제가 아마 과거 왕조시대의 호조판서를 포함해서 역대 재무 책임자 중 가장 돈을 많이 써 본 사람일 것이다. 원없이 돈을 썼다"고 말했을 때 정부 예산은 257조원 수준이었다.
이에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2020년도 제4차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재정의 효율성 제고로 '재정확대→경제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다면 세율을 올리지 않더라도 세입이 확대될 것"이라며 "효율적이지 못한 사업을 과감하게 정비할 수 있는 지출 구조조정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강력하게 추진할 재정준칙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역시 내년도 예산안 관련 브리핑에서 "어떠한 형태로든지 우리나라에도 재정준칙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9월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었다.
문제는 코로나19 비상상황이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는 재해·경기침체 시 재정준칙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여기에 △재정준칙의 구체적 지표를 법(국가재정법)이 아닌 시행령에 △재정수지 적자 등을 3~5년 평균치로 관리하는 방안 등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맹탕 준칙'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해외에서는 어떻게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어떻게 재정준칙을 운용 중일까. 코로나19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나라 곳간을 풀고 있는 건 해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많은 국가들이 코로나19 이전, 평시에는 엄격하게 재정을 관리해왔다.독일은 가장 엄격한 재정준칙을 가진 나라로 꼽힌다. 헌법에 못박았다. 부채의 신규발행을 GDP 대비 0.35%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자연재해나 국가통제를 벗어나 재정상황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즉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에서는 예외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1990년 예산집행법을 통해 '페이고(pay-go)' 원칙을 도입했다. 비용이 수반되는 정책을 세울 때 재원 확보 방안을 반드시 마련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나라살림에 '외상'을 쌓지 말라는 것이다. 2002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했지만 2009년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11%까지 치솟자 2010년 소멸시효 없는 페이고법을 재도입했다.
유럽연합(EU)는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EU 회원국은 ‘GDP 대비 국가채무 60%, 재정적자 3%’를 지키도록 정하고 있다. 1993년 발효 당시 유로 회원국의 재정적자 비율은 5.8%에 달했다. 재정준칙 도입 이후 재정건전화 정책을 적극 추진해 1997년 2.7%까지 낮아졌다. 코로나19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재정준칙 면책조항을 적용 허용하지 않았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