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금융당국이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의 구체적인 위험등급 산정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 현재 금융회사들의 금융투자상품 위험등급 분류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어 상품의 원금손실 위험 등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29일 펴낸 ‘금융투자상품의 위험등급 산정 방향’ 보고서를 보면 현재 금융투자상품의 위험등급 산정은 금융투자협회가 제정한 ‘표준투자권유준칙’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표준투자권유준칙은 금융사(판매사)들이 정량적·정성적 요소들을 감안해 각 금융투자상품별 위험도를 분류하도록 했다. 정량적 요소에는 과거 가격 변동성, 원금손실 가능범위, 기초자산의 종류 및 구성비중, 신용등급, 만기 등이 포함됐다. 정성적 요소로는 상품구조의 복잡성, 거래 상대방 위험 등이 제시됐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런 요소들을 어떻게 활용해 위험등급을 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빠져있다. 각 금융회사들 역시 위험등급 산정방식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기 보단 사전에 정한 예시를 활용해 상품별 위험등급을 형식적으로 분류하는데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상품 위험등급 산정기준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실제 자본연이 지난 6월 기준 7개 증권사와 4개 은행의 위험등급 분류기준을 확인한 결과 표준투자권유준칙 규정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고 있을 뿐 자체적으로 위험등급 산정방식을 마련한 곳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위원은 “2010년 8월27일 준칙 개정으로 삭제된 금융투자상품 유형별 위험등급 분류 예시를 지금까지 준용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금융투자상품의 위험등급 산정방식을 금융당국 규정에 명시한 유럽연합(EU)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U는 금융투자상품 핵심설명서 규정을 마련하면서 위험등급 산정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EU는 금융투자상품 위험등급을 시장위험과 신용위험을 고려해 산정한다. 시장위험은 상품 보유기간 동안 발생가능한 최대손실액을 1년 기준으로 환산한 변동성으로 측정한다. 변동성은 모두 7단계로 구분된다.

신용위험은 유럽증권시장위원회에 등록한 외부 신용평가사가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신용위험 등급 역시 7단계다. 시장위험 등급과 신용위험 등급 평가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원금손실 위험에 비례한 금융투자상품의 위험등급(1~7급)이 최종적으로 산정된다.
"금융투자상품 위험등급 산정기준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EU는 한국과 달리 금융투자상품 위험등급을 산정할 의무를 제조업자(자산운용사 등)에게 부여하고 있다. 아울러 상품 핵심설명서에는 위험등급에 대한 기술적 설명(유동성 위험 등)과 기타 유의사항을 기재하도록 했다.

이 연구위원은 “EU 사례를 참고해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령과 감독 규정 등에서 구체적인 위험등급 산정방식을 제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금융투자상품 위험등급 산정은 제조업자가 제공하는 자료에 기초해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행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투자상품 위험등급 산정 의무를 판매업자에 부과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판매업자가 구조가 복잡한 상품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하고 제조업자의 책임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금융소비자가 원금 손실 위험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EU처럼 위험등급을 원금 손실 위험에 비례해 표기하고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