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약품 수탁생산(CMO) 회사들이 잇달아 공장 증설에 나서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한 투자다. CMO 분야의 성장성을 보고 선제 투자한 국내 기업들이 ‘수주 증가→추가 설비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사이클을 타고 있다는 분석이다.

2조원 훌쩍 넘어선 설비투자

29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최근 두 달 동안 공장 증설 계획을 공식화한 바이오회사는 다섯 곳, 투자 금액은 2조원을 뛰어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다섯 곳엔 국내 매출 상위 CMO가 모두 포함됐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종 등에서 ‘투자 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CMO란 신약 개발사의 주문에 맞게 의약품을 대신 생산해주는 업체를 말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달 1조7400억원을 투입해 1회 배양 기준 25만6000L의 세계 최대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바이넥스도 500억원을 투입해 충북 오송공장을 추가로 짓는다. 에스티팜은 코로나19 백신 원료 생산을 위해 307억원 규모의 증설에 나섰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19 백신 CMO 생산을 위해 증설 작업을 하고 있다.

셀트리온도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와 코로나19 치료제 생산을 위한 3공장 건설을 지난달 공식화했다. 3000억원 안팎의 투자금이 들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대형 CMO뿐 아니라 중소형 CMO회사에도 수주가 밀려들고 있다. 바이넥스가 대표적이다. 수주 논의를 하고 있는 글로벌 제약·바이오기업 네 곳 중 한두 곳과 계약을 마치면 충북 오송 바이오 의약품공장의 시설은 완전 가동될 전망이다. 이 공장은 올해 가동을 시작했다. 이혁종 바이넥스 대표는 “새로 지을 공장에 대한 수주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코로나19 백신 생산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백신 생산 계약이 성사되면 5000L 규모의 동물 세포 배양이 가능한 공장을 지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러스가 포함된 동물 세포를 배양해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국내 CMO회사는 SK바이오사이언스 등 일부에 불과하다.

생산시설 부족에 몸값 급등

생산시설이 부족하다 보니 증설 비용을 대신 내고 생산 시설을 선점하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번 바이넥스 증설엔 바이오 신약 개발회사인 제넥신, 에이비엘바이오, 광동제약 등이 자금을 댔다. 생산을 맡기기 위해서다. 에스티팜은 수주 계약을 앞둔 시점에 증설을 발표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필요한 원료 의약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일부 국내 기업은 증설 비용을 바이오기업 등에서 투자받고 일정 기간 생산을 도맡아주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애플이 아이폰 생산을 위해 국내 정보기술(IT) 부품 회사에 증설 비용을 대주고 부품을 독점 공급받는 형식과 비슷하다.

국내 CMO기업에 대한 러브콜이 세계적으로 잇따르는 것은 코로나19 대유행에도 공장을 정상 가동해 안정적인 공급처란 인식을 심어준 영향이 크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올해 수주한 11건(1조8000억원 규모)은 모두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인 4월부터 계약이 이뤄졌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고품질 바이오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CMO회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국내 업체들이 주목받는 배경”이라고 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