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45년간 체제가 다른 분단을 겪은 데 이어 통일을 이룬 뒤 30년 동안 통합 작업을 꾸준히 벌이고 있다.
옛 동서독 지역 간의 경제적 격차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제 경제력 차이로 인한 통일 후유증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있다.
다만, 동독 출신 시민의 남아있거나 새로 쌓아올린 '마음의 장벽'은 독일 사회가 허물어뜨려야 할 도전 과제다.
2015년 이후 난민의 대량 유입에 따른 부작용과 결합해 동독지역 시민의 이른바 '2등 시민'이라는 불만이 독일 사회에서 최근 몇 년간 부각되고 있다.
동독 출신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해 "통일이 진행형"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사회통합 작업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해서 통일의 후유증을 지나치게 크게 보는 것은 무리다.
독일 시민사회는 분단기부터 축적해온 합의의 문화 등 갈등 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통합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고 있다.
특히 동독지역의 시민사회는 45년간의 전체주의 시대를 뒤로하고 통일 후 급속히 성장했다.
동독 체제 속에서도 세계 최초로 민주헌법 체제였던 바이마르공화국 등 부르주아 사회를 경험했던 내적 역량이 남아있던 점도 민주사회로의 적응을 빠르게 했다.
동서독 분단기보다 경제력 차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연하고 분단 이전 민주주의 체제를 경험하지 못했던 남북한과는 배경이 다른 지점이다.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교수는 1일 "이제 동서 간 경제적 격차는 큰 문제가 아니다.
사회통합도 상당히 진행됐다"면서 "한국에서는 통일의 후유증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그것을 꾸준히 이겨내려는 시민사회의 모습을 주목해 시사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가처분 소득 감안시 격차 크지 않아 자본주의 및 민주주의 체제였던 서독과 사회주의 및 권위주의 체제였던 동독의 통합은 쉽지 않았다.
우선 경제적 격차가 너무 컸다.
통일 당시인 1990년 동독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서독지역의 37%에 불과했다.
매년 독일 정부가 발간하는 통일현황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동독지역의 1인당 GDP는 전체 독일 평균의 73% 수준에 달했다.
가구당 가처분소득으로 따지면 동독지역의 물가가 서독지역에 비해 낮기 때문에 격차가 더 줄어든다.
동독지역의 가처분소득은 2018년 기준으로 독일 평균의 88.3%까지 올라왔다.
동독지역의 2005년 실업률이 서독지역의 2배인 20.6%에 달했으나 최근에는 7%대(서독지역 5%) 수준으로 줄었다.
통일 직후 서독 지역의 절반 정도에 못 미치던 생산성도 최근에는 80%대까지 올라갔다.
실질적인 생활 만족도 차이도 이제는 거의 없어졌다.
서독지역인 라인강 일대와 바이에른주 등 서남부 지역은 여전히 독일 경제의 중심인 데다, 동독지역에 농촌 지역이 상대적으로 많지만 30년 만에 이 정도로 격차를 줄인 것은 상당한 성과인 것이다.
이제 옛 동독지역의 경제력은 유럽연합(EU)의 평균 수준이다.
동독보다 경제력이 나았던 일부 남유럽 국가를 추월했다.
공산주의를 경험한 동유럽 국가들보다는 확연히 앞선다.
동독지역의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한 것은 통일 후 재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한 탓이다.
독일은 통일 이후 낙후된 동독지역에 투자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통일연대세를 거둬들여 왔다.
동서 간 격차가 줄어들면서 통일연대세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독일 정부는 오는 2021년부터 10% 정도의 고소득층만 통일연대세를 납부하도록 세제를 개편했다.
중도우파인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과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이 지난 2018년 다시 함께 대연정을 구성할 당시 합의한 안이었다.
◇ 경제통합보다 어려운 사회통합 과제…극우세력 등의 도전에 맞서 진전 매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보이는 경제통합보다 사회통합은 좀 더 어려운 과제다.
통일 이후 세대의 경우 '2등 시민'이라는 감정이 크지 않다.
서독 시절부터 탄탄하게 다져온 정치교육을 받았다.
현재 젊은 세대는 동독지역 시민사회가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경제적 결핍도 크게 겪지 않았다.
물론 부모 세대의 경제적 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자녀 세대로 이어져 내려오기도 한다.
분단기 동서로 갈렸다가 하나의 도시로 다시 돌아간 베를린에서 특히 그렇다.
한 도시 안에서 동서 간의 차이가 아직 상당하다.
서베를린은 상대적인 부유층이 거주한다.
동베를린도 미테와 크로이츠베르크의 일부 지역은 고급 주거지로 탈바꿈하고 있지만, 서베를린보다는 경제적으로 뒤쳐진다.
통일 당시 노인층은 응어리가 크지 않다.
당시 이들은 서독의 연금제도를 그대로 적용받아 통일 전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다 통일 당시 중년층 이상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동독지역 기업들이 무너지면서 대량 해고의 아픔을 맛봤다.
동독 지역 대학에서 상당수의 교수가 쫓겨났다.
일부 지역은 비밀경찰 출신을 철저히 색출해 불이익을 줬다.
동독 체제의 엘리트 계층 가운데 불만을 품어온 이들이 적지 않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불만은 2015년 난민의 대량 유입 이후 반(反)난민정서와 결합하기도 했다.
동독지역은 농촌이 많아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막연하게 난민, 외국인에 대한 공포감이 조장되는 경향이 생겼다.
반난민정서는 동독지역 청년 세대에도 파고들었다.
자신의 일자리를 이방인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다.
난민의 사회적 통합 작업에서 부작용이 나타나는 틈을 타 극우세력이 반난민정서를 부추기기도 했다.
극우 성향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지난 2017년 총선에서 제3당으로 연방하원에 입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배경이 뒷받침돼 있다.
2017년 총선 이후 지난해까지 여러 지방선거에서 AfD는 상당히 선전하며 기성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긴장케 했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20%까지 육박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지지율이 하락세를 이어가며 10% 정도까지 추락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기성 정치권이 질서정연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AfD 정치인들의 잇따른 반인류적인 언사로 민심을 잃는 형국이다.
난민의 사회통합 문제도 점차 개선되고 있고, 유입되는 난민 수도 최근 몇 년간 계속 줄었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최대 의제가 난민에서 환경문제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극우세력에 대한 견제 심리는 더 커지기도 했다.
동독지역 라이프치히에 거주하는 1990년생 여성 티나 아른트는 공영방송 ARD에서 방송된 '우리는 동독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전환기 패자인 많은 사람이 무엇인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어떻게 할지 모르는 가운데 권위주의 정당을 선택하기도 한다"면서도 "정치의 동기가 '증오'에 근거한 사람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은 어떤 세상에서도 정당화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독일 사회에서는 '2등 시민'의 문제는 현재의 극복 노력을 감안할 때 시간이 지나면 점차 더 해결될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고위직의 진출 비율 등에서 나타나는 동서 출신 간의 사회적 자본 차이도 마찬가지다.
독일 연방정부 특임관인 롤란트 얀 슈타지문서기록소 소장은 지난해 말 연합뉴스가 연재한 '서독의 기억' 인터뷰에서 "권위주의 체제를 오래 경험한 동독지역에서 역동적인 시민사회의 경험과 인식이 부족하다.
시민사회의 역량은 하루 이틀 안에 생기지 않는다"면서 "현재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시민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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