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H&A사업본부 세탁기 개발실에서는 '털털털' 하는 소리가 늘 들렸다. 세탁기가 돌아갈 때 나는 소리다.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려면 직접 시제품을 작동시키며 성능을 검증해야 하기 때문에 개발자들이 매일 세탁 코스를 돌렸다. LG전자 관계자는 "기존 제품과 성능은 같지만 색상·사용전압 등 일부 특성만 달라진 모델도 코스를 다 돌려봐야 했기에 비효율적인 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이곳에선 세탁기 소리가 뜸해졌다. LG전자가 시뮬레이션으로 제품을 테스트하는 가상개발시스템을 운영하면서다. 이 시스템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회사 측은 가상개발시스템 도입으로 세탁기 개발에 들어가는 시간이 10% 이상 줄어드는 성과가 있었다고 4일 밝혔다.

가상개발시스템은 3차원(3D) 시뮬레이션과 인공지능(AI) 등 기술을 활용한 소프트웨어다. 가전제품을 실제로 작동하는 것처럼 시뮬레이션으로 돌려 시험할 수 있다. 예측모델에 따라 검증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시간을 대폭 아낄 수 있다. 1시간 이상 걸리는 표준세탁코스 기준 테스트 결과가 1분만에 나온다.

LG전자는 그룹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전환(DX)의 일환으로 가상개발시스템을 들였다. 테스트 시간이 가장 많이 드는 가전인 세탁기의 한국·북미 제품에 시범적용했다. 새로운 기술과 성능을 갖춘 핵심제품은 기존처럼 시제품으로 테스트하고, 핵심제품에서 용량이나 전압 등만 바뀌어 나온 모델은 가상개발시스템으로 시험했다.

회사 측은 가상개발을 통해 테스트 시간이 줄어들 뿐 아니라 개발인력을 신기술 개발 등 핵심업무에 집중투입할 수 있어 효율이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최근 TV, 휴대폰, 냉장고 등 품목에도 가상개발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며 "유럽 동남아시아 등 지역으로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