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코로나 운전자금' 대기업 5조원↓…중기는 10조원↑
지난 4월 이후 5대 은행의 기업 대출 추이가 회사 규모에 따라 갈린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은 경영 정상화에 필요한 운전 자금 대출을 넉달새 5조원 줄였다. 반면 중소기업은 10조원 더 늘렸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 대기업은 ‘급한 불’을 껐지만 중기는 여전히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기업 5조 줄일 때 중기는 10조 더

4일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에 따르면 대기업 운전 자금 대출은 지난 8월 49조1651억원을 기록했다. 운전 자금 대출이 최고치를 찍은 지난 4월(53조8654억원)에 비해 4조7000억원 줄어든 수치다. 운전자금 대출은 기업이 근로자 임금, 회사 운영 비용 등 경영상 필요시 받는 대출이다. 5대 은행의 대기업 운전자금 대출 규모는 지난 1월만 해도 41조5933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매달 급격히 불어났다. 다만 지난 4월 이후 하락세로 접어들어 6월부터 49조원대로 내려 왔다.

반면 중기 운전자금 대출 수요는 4월 이후에도 10조원 가량 더 불어났다. 5대 은행의 운전자금 대출은 지난 4월 220조2858억원에서 지난 8월 230조5949억원까지 늘었다.

기업 대출 규모가 가장 큰 기업은행의 대출 증가폭은 더 컸다. 이 은행의 중기 운전자금 대출은 지난 3월 88조3600억원에서 지난 6월 97조650억원으로 2분기에만 10조원 증가했다. 아직 3분기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같은 추이를 고려하면 전체 중기의 운전자금 대출 규모는 더욱 커졌을 것이라는 게 업계 예상이다.

◆급한 불 끈 대기업, 허덕이는 중기

기업 규모 별로 대출 수요가 달라진 것은 달라진 경영 환경을 반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3월까지만 해도 대기업-중소기업 나눌 것 없이 모든 기업이 경영에 비상이 걸렸다. 모든 기업이 앞다퉈 ‘만약’을 대비해 대출을 받아갔다.

그러나 금융 시장이 비교적 안정된 4월부터 상황이 엇갈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 19 사태 이후 자본 시장이 경색될 조짐이 보이면서 대기업들이 만약에 대비해 급격히 대출 규모를 키웠다”며 “신용이 좋은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자본 조달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채권 발행 시장이 정상화되자 대출을 할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은 운전 자금 대출 규모를 줄이고 시설 자금 대출만 늘렸다. 시설 자금 대출은 공장 신·증축 및 개보수, 부지 매입과 기계 구입 등 설비 투자시 받을 수 있는 대출이다.

5대은행에서 받아간 시설 자금 대출은 지난 4월 30조3548억원에서 지난 8월 31조7312억원으로 1조 4000억원 증가했다. 중기도 같은 기간 시설 자금 대출이 233조1376억원에서 240조9801억원으로 7조8000억원 가량 늘었다.

다만 운전 자금 대출에 비해서는 증가율이 낮았다. 기업은행을 포함한 6대 은행 기준으로는 이같은 흐름이 더 명확하다. 지난 2분기 중기 운전자금 대출은 35조원 가량 는 반면 중기 시설 대출은 12조원 느는데 그쳤다. 중기에서는 운전 자금 대출 수요가 시설 자금 대출 수요보다 3배 가량 높았다는 얘기다.

정부도 중기 경영 상황을 고려해 운전 자금 대출을 당분간 더 풀어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 중개 지원 대출 한도를 8조원 더 늘리기로 했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을 촉진하기 위해 한은이 낮은 금리로 은행에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다. 시중은행이 지원 대상 기업에 저리로 대출을 해주면 한은은 대출금액의 절반 이상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아직까지 중기-소상공인은 신규 투자 보다 당장의 경영 안정을 위해 대출을 받는 수요가 대부분”이라며 “코로나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중기의 경영난이 금융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