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운동 선구자' 이이효재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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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로서 1세대 여성운동의 기틀을 닦은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4일 별세했다. 향년 96세.
192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그는 이화여대와 미국 앨라배마대를 거쳐 1957년 컬럼비아대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듬해 모교 이화여대에 사회학과를 창설하면서 교수로 부임했다.
고인은 1977년 이화여대에 국내 최초의 여성학과 설치를 주도하면서 한국 상황에 맞는 여성학 도입·연구에 힘썼고, 한국여성민우회 초대 회장과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 등을 지내며 한국 초창기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1980년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시국선언으로 교수직에서 해임됐다가 복직하기도 했다.
여성운동가로서 고인의 발자취는 한국 사회의 변화상 곳곳에 남아 있다. 호주제 폐지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운동, 부모 성 같이 쓰기 선언 등이 대표적이다. 사회학자로서는 ‘분단사회학’을 개척해 갈라진 한반도의 역사가 여성과 가족, 사회 구조에 끼친 영향에 천착한 것 등이 업적으로 꼽힌다. 그는 한국사회학회 회장과 한국가족학회 초대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빈소는 창원경상대병원에 마련됐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192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그는 이화여대와 미국 앨라배마대를 거쳐 1957년 컬럼비아대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듬해 모교 이화여대에 사회학과를 창설하면서 교수로 부임했다.
고인은 1977년 이화여대에 국내 최초의 여성학과 설치를 주도하면서 한국 상황에 맞는 여성학 도입·연구에 힘썼고, 한국여성민우회 초대 회장과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 등을 지내며 한국 초창기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1980년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시국선언으로 교수직에서 해임됐다가 복직하기도 했다.
여성운동가로서 고인의 발자취는 한국 사회의 변화상 곳곳에 남아 있다. 호주제 폐지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운동, 부모 성 같이 쓰기 선언 등이 대표적이다. 사회학자로서는 ‘분단사회학’을 개척해 갈라진 한반도의 역사가 여성과 가족, 사회 구조에 끼친 영향에 천착한 것 등이 업적으로 꼽힌다. 그는 한국사회학회 회장과 한국가족학회 초대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빈소는 창원경상대병원에 마련됐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