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일의 디지털 포토 콜라주 회화 ‘조선왕실 여성의 누드’ 시리즈(위)와 대리석으로 전통가구를 조각한 권창남의 ‘그리움 그곳에 가면’.
우종일의 디지털 포토 콜라주 회화 ‘조선왕실 여성의 누드’ 시리즈(위)와 대리석으로 전통가구를 조각한 권창남의 ‘그리움 그곳에 가면’.
좀 떨어져서 보면 나무로 제작한 전통가구다. 반닫이, 이층장, 삼층장, 문갑 등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나무가 아니라 돌로 만든 작품이다. 사람과 동물의 형상을 조각하듯 돌을 깎아 제작한 조각가 권창남의 전통가구 조각이다. 가구의 모서리와 표면을 장식하는 장석(裝錫)과 경첩의 문양까지 정교하게 재현해 실제 가구처럼 보일 정도다.

멀리서 보면 빛바랜 옛날 흑백 사진 같다. 한껏 멋을 부린 가체(加)에 궁중 복식을 입은 여인들의 차림새가 구한말의 기록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아주 가까이서 살펴보면 작은 돌의 이미지를 모자이크하듯 촘촘히 박아놓은 우종일의 디지털 콜라주 회화다.
권창남의 ' 기억(Remembrance)', 43x43x55cm, 황옥.2016.2. 갤러리 마리 제공
권창남의 ' 기억(Remembrance)', 43x43x55cm, 황옥.2016.2. 갤러리 마리 제공
서울 신문로 갤러리 마리에서 열리고 있는 중견 작가 권창남과 우종일의 2인전 ‘경희궁-현재시대’는 이처럼 첫눈의 허를 찌른다. 나무인 줄 알았던 것이 돌이고, 사진인 줄 알았던 게 회화다. 전시 제목은 경희궁 언저리에 있는 갤러리의 입지와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 기법으로 가공한 현재성을 가미해 붙였다.

권창남은 대리석, 오석, 그린 마블, 청옥, 황옥 등 여러 가지 색과 재질의 돌로 전통가구를 재현했다.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재현한 그의 작품들은 나무로 제작한 전통가구로 오인하기 십상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일 거라는 예상은 차갑고 단단하며 매끈하게 다듬어진 돌의 촉감에서 반전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검은색 대리석(네로마로키나) 몸체와 청옥 장석, 옐로스톤 몸체와 그린 마블 등 가구 본체와 장식의 색상 대비도 다채롭다.
권창남의 '기억 - 그리워하다(Remembrance)',115x53x90cm,네로 마로키나,청옥, 2020. 갤러리 마리 제공
권창남의 '기억 - 그리워하다(Remembrance)',115x53x90cm,네로 마로키나,청옥, 2020. 갤러리 마리 제공
서울대 조소과 출신인 권창남은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작가다. 이번 전시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리석으로 집도 짓는 사람이다. 엄청난 시간과 노동을 요하는 작업이지만 딱딱하고 건조한 돌을 신기에 가까울 만큼 정교하게 빚어내는 솜씨에 국제 무대에서도 찬사를 보내고 있다. 갤러리 전시공간은 물론 복도, 카페의 뜰에까지 놓인 그의 가구 조각들은 주변 환경과 전혀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다.
우종일의 'Joseon Dynasty Royal Family Series' Empress #7, 120cmX171cm, 2014.
우종일의 'Joseon Dynasty Royal Family Series' Empress #7, 120cmX171cm, 2014.
우종일의 작품은 사진인 동시에 사진이 아니라서 매력적이다. 35년 동안 인체 누드의 미학에 집중해온 그는 사진 작품의 극사실주의적 특성을 사진으로 해체한다. 왕족과 궁녀 등 조선 왕실의 복식을 차려입은 여성들을 고해상도로 찍은 뒤 손톱만 한 옥돌과 몽돌의 사진 이미지로 픽셀을 대체하듯 콜라주했다. 흑색 사진처럼 보였던 작품을 아주 가까이서 보면 보석처럼 작은 돌들이 형형색색의 빛깔로 콜라주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돌 깎아 빚어낸 전통 가구 조각…옥돌·몽돌 입힌 조선 여인 그림
사진으로 재현된 이미지를 재료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은 그래서 회화적이다. 회화를 전공한 뒤 사진 작업을 지속해온 그는 포토 콜라주를 통해 다시 회화로 돌아갔다. 이번 전시에는 한복을 입은 궁중 여인들의 누드 시리즈 디지털 회화도 함께 내놨다.

권창남의 전통가구 돌조각 17점과 우종일의 디지털 회화 18점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11월 15일까지 이어진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