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제는 범죄자의 친족, 혹은 가까운 사이나 이웃을 주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함께 처벌하는 근대 이전의 사법제도다. 개인주의가 강한 서양은 중세 이후부터 시행 사례를 찾기 힘든 반면, 혈연 중심의 동양에선 일부 지역에서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반역자의 처자식을 처형한 뒤 목을 자르는 등의 연좌형을 대명률(大明律)에 의거해 시행했다. 대역죄의 경우 3족(부계, 모계, 처계)을 멸하기도 했다. 연좌형이 폐지된 것은 1894년 갑오경장에 이르러서다.

그나마 한국은 연좌제 금지가 현재 헌법(13조3항)에 명시돼 있지만 일본에선 아직 헌법에 포함돼 있지 않다. 철로에 투신자살한 사람의 유가족에게 손해배상을 물리는 일본 법이 ‘연좌제의 유산’이란 분석도 있다. 다섯 가구에 한 명씩 선전원을 배치해 가족생활까지 감시, 통제하는 북한의 사례는 말할 것도 없다.

헌법상 금지돼 있다고는 하나, 우리 사회에도 연좌제의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3억원 이상 개별 주식을 보유한 ‘대주주’에게 적용되는 주식 양도소득세 가족 보유분 합산 방식은 개인투자자들로부터 ‘현대판 연좌제’로 지목돼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올해 말 기준으로 ‘한 종목에 3억원 이상’ 투자한 사람들은 내년 4월부터 차익 실현 시 최고 33%(지방세 포함)를 양도세로 내야 한다.

이때 조부모부터 손자녀까지 위아래 각 3대가 투자한 종목을 합쳐 과세하기로 한 게 문제가 됐다. 시가총액이 350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 주식을 할아버지, 아버지, 본인이 1억원씩 투자한 가족도 수익의 3분의 1을 토해내게 생겼으니, ‘개미’들이 아우성 치는 것도 납득이 간다.

만 60세 이상 부부가 공동명의로 5년 이상 집을 보유했어도 고령자·장기보유 세액공제를 못 받게 된 것도 부부가 함께 적용받는다는 점에서 연좌제를 연상시킨다. 온갖 부동산 규제를 쏟아내다 벌어진 일이다. 부모와 연을 끊은 자식에게 부모 빚 갚기를 강요하는 ‘빚투’, 좀체 사라지지 않는 친일파나 빨갱이 낙인찍기도 마찬가지다.

현대판 연좌제로 비판받은 주식 양도세 가족 합산방식을 결국 정부가 손볼 모양이다. 청와대 게시판에 오른 ‘대주주 양도세 폐기’ 청원에 20만 명 넘게 동의했다. 이런 정책·관행들은 위헌적, 대증적일뿐더러 목표 달성에 얼마나 효과적일지도 의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연좌제식 발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왕조시대의 DNA가 21세기에까지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인가.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