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르는 아침] 막스 브루흐 - 콜 니드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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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지난주에 100주기를 맞아 소개한 독일 작곡가 막스 브루흐가 타계한 지 13년이 지난 1933년 나치가 집권했다. 나치 정권은 브루흐가 유대인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그의 곡 연주를 금지했다. 대표적인 유대인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의 작풍을 계승했을 뿐 아니라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콜 니드라이’(1881)에 유대교의 ‘속죄의 날’ 기도 선율을 직접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나치는 브루흐의 조상 중에 유대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어쩌면 브루흐가 유대교에 경도됐으리라는 추정만으로 연주를 막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브루흐는 독실한 프로테스탄트였으니 이 역시 잘못된 것이다. ‘콜 니드라이’에 사용된 선율이 너무도 강렬한 유대풍이었기에 오해가 증폭됐을 뿐이다. 사실 브루흐는 평생 스코틀랜드, 스웨덴, 보헤미아 등 여러 나라 선율을 인용하는 데 익숙한 작곡가였다. 모든 것을 정치적 목적과 논리에 갖다 붙이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유형종 < 음악·무용칼럼니스트 (무지크바움 대표) >
하지만 브루흐는 독실한 프로테스탄트였으니 이 역시 잘못된 것이다. ‘콜 니드라이’에 사용된 선율이 너무도 강렬한 유대풍이었기에 오해가 증폭됐을 뿐이다. 사실 브루흐는 평생 스코틀랜드, 스웨덴, 보헤미아 등 여러 나라 선율을 인용하는 데 익숙한 작곡가였다. 모든 것을 정치적 목적과 논리에 갖다 붙이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유형종 < 음악·무용칼럼니스트 (무지크바움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