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10주 권고안 전혀 논의 안돼…임부 건강 위한 마지노선"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대한산부인과학회 등이 논의를 통해 낙태 허용 주수를 10주로 권고하는 안을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번 낙태죄 관련 개정안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한경닷컴>과의 통화에서 "복지부가 산부인과계와의 회의를 3차례 연기하면서 낙태죄 관련 논의는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문가 단체와 일절 대화하지 않은 낙태죄 개정안은 탁상공론일 뿐"이라고 했다.
낙태죄 개정안 입법예고…의료계 "10주 권고안 전혀 논의 없어"
정부는 7일 현행대로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그러나 정작 '낙태 허용 임신 주수'를 결정하면서 임부 건강, 태아 상태 등 낙태 관련 전문 지식을 갖춘 의료계와의 논의나 반영이 없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전문가 단체와 협의하지 않은 일방적 발표는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책 이후의 부작용, 해당 안건에 대한 반응과 반작용 등에 대한 현장 의견을 듣는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역시 전문가 단체와 심도 있는 논의 단계 없이 낙태죄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는 데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최안나 대한산부인과학회 낙태법특별위원회 간사는 "복지부에 전달한 10주 논의안이 법무부에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부분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며 "관련 안을 전달한 이후 낙태죄 관련 내용에 대한 복지부 측 얘기는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7일 개정안의 구체적 내용을 살핀 뒤 오후 대한산부인과학회 및 의사회 회의를 열어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부 건강 위한 마지노선이 10주"
의료계에서 낙태 주수를 10주로 권고한 것은 임산부 건강을 고려한 결과다.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10주 이전에는 수술 도중 위험성과 합병증 발병, 장 천공 등 수술 전후에 대한 생리적 변화가 크지 않으나 10주를 넘어서면 생명체를 조각내 긁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10주가 임신부에게 가장 안전한 주수이자 유해가 적은 마지노선이라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4주 낙태는 산모가 언제든지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는 주수"라고 강조했다.
여성이 임신 여부를 판단하는 데 10주가 결코 짧지 않다고도 했다.
김재연 회장은 "임신 이후엔 생리를 포함해 신체적 변화가 다수 발생한다. 때문에 대부분 임부는 생리가 멈춘 뒤 5~6주 사이에 방문한다"며 "대다수 낙태가 10주 이내에 이뤄지고 있는 점까지 감안하면 낙태 주수를 14주로 둔 것은 허용 범위를 매우 넓게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가이드라인을 14주로 둔 것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는 실질적인 전문가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법안이 나온 게 아쉽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각 이해관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통 합의점을 찾아 더 이상의 사회문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낙태 가능 주수를 14주로 두는 것이 임부 건강은 물론 태아 생명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손인숙 건국대 산부인과 교수는 "임신 초기 스크리닝을 통한 기형아 선별검사 시기가 보통 11~13주 사이고, 해당 검사에서 고위험 결과가 나오면 정밀검사를 진행한다"면서 "14주까지 낙태가 허용되면 선별검사 결과만 보고 정밀검사에선 이상이 없을 수 있는 아이들이 유산될 위험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10주까지 약품으로 하는 내과적 유산이 가능한 시기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임부의 안전을 위해서도 해당 시기가 적당하다"고 부연했다.
이번 개정안은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4월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처벌하도록 한 형법상 '낙태죄'가 임부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위헌이라며 올해 말까지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헌재는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에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로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렸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