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주 사진작가, 울산 석남사 숲서 작업…울창하고 천적 드물어 최적 안식처
부화부터 둥지 떠나는 과정 등 총망라…"생태의 가치, 알리고 공유하고 싶어"
천혜의 숲과 5년간 기다림이 일군 결실…조류 43종 생애 기록
"이토록 수려하고 숭엄한 숲과 새들의 생태, 그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5년을 공들였지요.

이제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많은 분과 나누려 합니다.

"
'영남알프스'로도 불리는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가지산 기슭에 자리 잡은 고찰(古刹) 석남사는 국내 최대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석남사를 품은 숲은 울산과 인근 경남지역 주민이라면 사랑해 마지않는 공간이다.

거대하고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사찰을 향해 뻗은 진입로를 걷노라면, 팍팍한 일상의 잡념을 부지불식간에 머릿 속에서 떨쳐버리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생태사진작가 황종주(63) 씨는 이런 석남사 숲을 꼬박 5년간 오가면서, 숲에 서식하는 새들의 삶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냈다.

도심과 그다지 멀지 않은 데도, 비현실적인 자연 풍경과 다채로운 새들의 생태를 선사하는 숲의 매력에 황 작가는 푹 빠졌다.

계곡과 숲이 잘 보존된 데다 천적은 드물어, 조류 안식처로는 그만한 곳이 없었다.

주말과 휴일은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숲을 지켰고, 본업에 매달려야 하는 평일에도 야행성 조류를 만나려 초저녁부터 한밤까지 숲을 헤매기 일쑤였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새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노력은 2016년 봄부터 올해 가을까지 계속됐다.

새의 생태를 촬영하는 작업이란, 그저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가 새를 발견하면 셔터를 눌러대는 수준의 일이 아니다.

천혜의 숲과 5년간 기다림이 일군 결실…조류 43종 생애 기록
가령 작은 둥지를 발견했다면, 황 작가는 근처에 위장막을 치고 카메라를 설치한다.

그리고 그 자신은 100m가량이나 물러선 곳에 자리를 잡는다.

촬영을 빌미로 새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은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긴 기다림이 시작되고, 단 하나의 순간이 포착되면 리모컨으로 셔터를 누른다.

만족스러운 사진이 나왔더라도 작업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황 작가는 빛의 양이 적은 일몰 때는 느낌이 어떨지, 다른 방향에서 촬영하면 더 잘 표현되는 것은 아닌지 등을 끊임없이 궁금해하면서 마치 본인이 철새가 된 것처럼 같은 자리를 주기적으로 찾았다.

계절이 20번 가까이 변하는 동안 이어진 이런 노력으로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텃새와 철새 43종 생태를 포착할 수 있었다.

호반새, 큰유리새, 솔부엉이, 올빼미, 쇠딱따구리, 노랑할미새, 흰배지빠귀, 황조롱이 등 모두 나열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그 결실은 풍성하다.

새끼가 부화하고, 먹이를 먹이고, 둥지를 떠나는 과정 등 새의 생애가 총망라됐다.

황 작가 자신도 현재 보유한 사진과 영상이 어느 정도 분량인지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풍부한 작품과 생태 자료가 확보됐다.

그는 "43종 외에 카메라에 담지 못한 새가 더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더 세밀한 작업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할 정도로 석남사의 숲과 새를 관찰했다"라면서 "숱한 시간과 열정으로 얻어낸 풍부한 자료와 경험을 일반에 공개해 많은 분께 석남사 숲의 가치와 조류 생태의 소중함을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황 작가는 물류업체를 경영하는 본업이 있다.

그러나 사진에 바친 그의 열정을 듣노라면, 사진작가를 부업이나 취미쯤으로 여기기도 어려울 듯했다.

20대 후반부터 인물과 풍경 사진 촬영을 즐겼던 그는 약 20년 전 디지털카메라 보급 확산과 함께 생태 사진에 매진했다.

카메라 성능이 급발전하면서 그동안 필름 카메라로 담기 어려웠던 새나 동물의 생생한 움직임을 담아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철새를 촬영하러 전국을 안 다녀본 곳이 없고, 약 5년 동안은 죽음의 강에서 생태의 강으로 환골탈태한 태화강 주변 생태에만 매달렸다.

그 후에 마음이 꽂힌 곳이 석남사 숲이다.

천혜의 숲과 5년간 기다림이 일군 결실…조류 43종 생애 기록
생태 사진의 매력에 대해 황 작가는 "20년 이상 관찰하다 보니 보였던 새가 안 보이고, 안 보이는 새가 보이는 등 자연과 생태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라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생태 파괴의 위기 등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고, 사진을 공개해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 과정을 지켜본 한 중견 사진작가는 "한 장소에서 5년간 집요하게 새를 관찰한 것은 대단한 작가정신이 아니면 할 수 없다"라면서 "개별 사진도 작품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우리나라 조류 생태 기록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황 작가는 5년간 결실을 전시, 교육 등으로 일반과 공유하려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완화되면 주요 기관에서 전시회를 열고, 그가 평소 초등학교를 순회하면서 진행한 생태교육도 재개할 예정이다.

공공 목적으로 조류 사진 활용을 희망하는 곳이 있다면 흔쾌히 제공할 의사도 있다.

황 작가는 "비록 5년 동안이지만, 잦아진 태풍과 폭우 등으로 둥지가 날아가고 어린 새들이 떨어져 죽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지구를 떠올리기도 했다"라면서 "온전하지 않은 환경이 도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망각하지 않고, 자연을 아끼고 기후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교훈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황 작가는 지난해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천상의 새, 두루미(학)' 전시회를 연 것을 비롯해 2017년 울산 국제 버드페어 초대 전시, 2016년 선바위도서관과 울산대병원 조류사진 개인전 등을 진행한 이력이 있다.

현재는 태화강 국가정원 안내센터에 주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천혜의 숲과 5년간 기다림이 일군 결실…조류 43종 생애 기록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