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식증으로 두차례 학업 중단 딛고 최고 시인 반열에
시로 자연 노래하며 고통·고독·상처 극복

8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루이즈 글릭(77)은 사실 예상을 깬 수상자였지만 미국에선 문학적 입지가 탄탄한 시인이다.

특히 1992년 출간한 대표작 '야생 붓꽃'(The Wild Iris)으로 퓰리처상과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상을 받았고 미국도서상, 미국비평가협회상, 불링겐상, 월러스 스티븐스상 등 시 부문 주요 문학상을 석권한 시인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생소한 시인일 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거의 연구가 되지 않은 시인이다.

국내 영문학 교수들도 "잘 모르는 시인"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처음 듣는다"는 영문학 전문가도 있었다.

미국 내에서조차 수많은 수상 경력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비주류 문인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정은귀 한국외국어대 영문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글릭은 미국에서도 저평가된 시인"이라며 "퓰리처상 등 저명한 문학상을 받았지만, 미국에서도 메인 스트림에서는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한국 비평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글릭의 시는 고독, 상실, 트라우마, 고립, 죽음, 배신 등으로부터 받는 고통을 극복하고 삶을 복원하는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긍정적으로 노래하면서 일상 속에서 지친 우리 삶을 추스르도록 돕는 강력한 시어를 구사한다는 평가다.

이런 글릭의 시 세계는 순탄치 않았던 그의 삶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글릭은 청소년기에 거식증에 걸려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대학에 가서도 거식증으로 학업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었다.

글릭은 또 두 차례 이혼하는 등 성인이 돼서도 힘든 과정을 겪었다.

상실과 트라우마의 극복…'치유의 시인' 글릭
정 교수는 "글릭은 거식증을 극복하려고 7년간 싸웠다.

그 과정에서 삶과 죽음, 병, 상실, 인간사의 아픔을 겪었고, 이를 시로 표현했다"면서 "그의 시에는 자연 세계가 등장하는데, 인생의 죽음, 질병, 트라우마, 재난 이런 것들을 통과하고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긍정의 씨앗을 자연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글릭의 수상 배경에 대해 "인간 삶의 고통을 알고, 이를 넘어서는 복원력과 회복력을 자연과 일상 속에서 찾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 같다"면서 "특히 코로나라는 대위기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대전환의 시기를 맞아 모두가 고립과 단절, 불안 속에 있는 상황에서, 어린 시절부터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고 이를 시를 통해 극복해낸 시인으로서 가치를 높이 평가한 듯하다"고 말했다.

글릭은 미국 평단에서 '자전적 시인'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은 고백 시인이나 페미니스트 시인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김영민 동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글릭은 자아성찰적이면서 보편적인 인류애를 추구하고, 인간의 아름다움과 본질적 내면을 바라본다"면서 "젊은 시인들이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헝가리계 유대인인 글릭은 1943년 미국 뉴욕주에서 태어났다.

현재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살면서 예일대 부교수 겸 상주 작가로 일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