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아로 태어나 교육 못 받아
산술·기하·해부학 밤새워 독학
36세에 라틴어 배우느라 진땀
'역발상 지혜'로 예술·과학 융합
고두현 논설위원
‘전인적 르네상스인’으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사생아였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라틴어를 몰랐기에 지식인들의 따돌림을 받았다. 기하학적 감각은 뛰어났지만 산수에는 약해 방정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눗셈도 못해 애를 먹었다.
그러나 경험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자신의 결점보다 장점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이른바 ‘거꾸로 사고법’이다. 그 원동력은 끊임없는 호기심과 섬세한 관찰력, 엉뚱할 정도의 상상력이었다. 그는 미술뿐 아니라 해부학, 물리학, 광학, 군사학 등 13개 분야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그의 유산은 예술·과학 작품 외에 7200쪽의 노트로 전해져 온다. 세계 최초의 헬리콥터와 자동차, 낙하산, 잠수함 개념도도 여기에 실려 있다.
그가 그린 낙하산 날개는 오늘날 굴삭기 드릴과 비슷한 나사 모양이다. 그는 납작한 나선형 프로펠러 두 개를 역회전시키는 방식으로 헬리콥터 날개를 제작했다. 그리고 풀 먹인 천을 넓은 돛처럼 펼쳐 원형판 위의 돛대에 달고 고속으로 회전시키면 공중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가 나는 원리를 활용한 이 아이디어는 현대 헬리콥터의 원형이 됐다.
해부학에서는 갈릴레이보다 1세기 앞서 과학혁명의 단초를 열었다. 그는 인체를 해부한 뒤 각 부위를 2차원과 3차원으로 그려냈다. 혈액계의 중심이 간이 아니라 심장이라는 것을 알고 심장의 구조와 기능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해부학자들이 그 비밀을 밝혀낸 것은 450년 뒤였다. 이는 ‘모나리자’의 오묘한 미소를 완성하는 데에도 한몫했다. 그는 미소를 만들어내는 근육을 알아내기 위해 44개에 이르는 안면과 입술 근육을 일일이 해부했다. 이를 표현하는 데에는 ‘안개’ 같은 묘사법인 ‘스푸마토 기법’을 동원했다.
나이 들어서도 그는 경험과 배움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다. 36세에 라틴어 교본을 사서 독학하면서 단어를 외우느라 낑낑댔다. 50대에 20대 교수의 제자로 들어가기도 했다. 자신이 할 일 목록 15개 중 ‘산술의 달인에게 삼각형의 면적 계산법을 배울 것’ 등 공부에 관한 게 8개나 됐다.
최근에 본 다큐멘터리 영화 ‘루브르박물관 기획 특별전’에서 또 다른 장면을 확인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다빈치 500주기 특별전 현장을 찍은 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브누아의 성모’를 적외선 반사로 비추자 여러 번 수정한 흔적이 점차 드러났다. 다른 그림에도 수없이 고친 밑그림이 보였다. ‘모나리자’ 또한 30년에 걸쳐 손질을 거듭한 뒤 완성했으니, 완벽주의랄까 완전주의랄까 그의 집념에 고개가 숙여진다.
학자들은 “다빈치의 이런 면모가 10세 이전의 아이 같은 동심과 뜨거운 호기심, 광적일 정도의 관찰력, 시공을 뛰어넘는 상상력에서 나왔다”고 분석한다. 자신의 결핍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역발상 사고’도 그가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았기에 오히려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500년 전 나눗셈에 서툴렀던 한 아이가 당시의 틀에 박힌 지식을 지나치게 주입받고 자랐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새삼 돌아보게 된다.
잡스·게이츠도 영웅으로 꼽은 '혁신적 인물'
“우리는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 있다. 창의성이 발생하는 인문학과 과학의 교차점! 이를 보여준 궁극의 인물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다.”스티브 잡스가 애플 신제품을 내놓을 때 자주 했던 말이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예술과 공학 양쪽에서 모두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며, 그 둘을 하나로 묶는 능력이 그를 천재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잡스가 새로운 기술에 예술적 디자인을 접목해 정보기술(IT) 분야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도 첨단기술과 상상력의 융합 덕분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는 72쪽 분량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노트를 구입하는 데 3080만달러(약 349억원)를 쓰면서 “그는 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사람”이라고 평했다. 다빈치의 유품 노트 1만3000여 쪽은 이리저리 흩어져 현재 7200쪽 정도 남아 있다. 이 가운데 72쪽짜리 노트를 1994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가 구입해 전 세계에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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