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에 고객 뺏길라…이재용 '긴급 네덜란드행' 이유 있었다 [노정동의 3분IT]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 8일 삼성전자가 올 3분기(7~9월) '어닝 서프라이즈(증권사들의 실적 전망치를 크게 뛰어넘는 것)' 실적을 발표한 날 이재용 부회장은 돌연 네덜란드로 출국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해외 출장을 떠난 것은 지난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한창이던 때 중국 시안 반도체 사업장을 찾은 이후 약 5개월 만입니다.
의외였습니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이 해외 출장을 재개한다면 지난 2월 코로나19 확산세 때문에 기공식 행사를 취소했던 베트남 하노이 삼성전자 연구개발(R&D) 센터를 가장 먼저 찾을 것이란 예상이 나왔습니다. 최근 베트남 정부가 외교관과 기업인 등에 대해 자가격리를 면제해주는 패스트트랙(신속통로·입국절차 간소화)을 적용하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5세대 통신(5G) 사업에 특히 힘을 싣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도 후보지였습니다. 이 부회장의 일본 재계 인맥을 활용해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일본 내 사업 활로를 뚫는 게 급해보였기 때문입니다. 일본 역시 지난 8일부터 '기업인 특별입국절차'가 적용되는 나라였습니다.
삼성전자가 전문가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3분기 실적을 공시한지 이틀 뒤 TSMC가 지난 9월 매출액이 1275억8500만대만달러(약 5조1289억원)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9%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 금액은 월 매출을 기준으로 사상 최대였던 지난 8월 약 1229억대만달러(약 4조9118억원)보다도 3.8% 많은 것입니다.
8~9월 연달아 사상 최대 매출을 경신한 TSMC는 올 3분기 실적도 신기록을 썼습니다. TSMC의 올 3분기 매출은 약 3564대만달러(약 14조243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1.6%, 지난 2분기보다는 14.7%나 늘었습니다.
업계에선 다른 반도체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요가 늘면서 수혜를 입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TSMC의 최대 고객사인 애플에 공급된 5나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출하량이 증가했고, 7나노 이하 고사양 반도체 제품 수요도 크게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됐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건 TSMC가 중국 화웨이와 거래를 끊고도 이 같은 성적을 냈다는 것입니다. 화웨이는 TSMC 전체 매출의 10%가량을 차지하는 그야말로 'VIP 고객사'입니다. 화웨이의 칩 위탁생산을 맡아왔던 TSMC는 미국 정부의 제재가 시작된 지난 5월 이후 화웨이로부터 신규 주문을 받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후 지난 7월에는 TSMC의 매출이 6월 대비 12.3% 줄어 화웨이 발(發) 타격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반면 삼성전자의 올 3분기 반도체 실적은 지난달 15일 미 정부의 추가 제재를 앞두고 반도체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화웨이의 긴급 주문이 몰리면서 선방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가 중론이었습니다.
반도체는 웨이퍼를 미세하게 깎을수록 품질이 올라가는데 EUV는 기존 불화아르곤(ArF) 대비 약 14배 파장이 짧아 미세한 회로를 그리는 데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얇은 붓을 사용하면 더 섬세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향후 10년 간 반도체 투자는 EUV 노광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얘기가 업계에서 나올 정도입니다.
EUV 노광기는 5나노 이하 미세한 회로패턴을 그려넣을 수 있는 유일한 장비로 대당 가격만 2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 대신 삼성으로 고객사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이 장비의 안정적 공급이 필수적이지만 최근 ASML과의 EUV 장비 구매 계약에서 고전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으로 미국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TSMC의 주문이 ASML에 몰린 탓입니다. ASML은 지난해 이 장비를 26대, 올해는 약 35대 생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이 장비를 공급받지 못하면 더 좋은 반도체를 공급받으려는 기업들은 주문을 삼성이 아닌 TSMC에 넣을 것이 불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재용 부회장의 네덜란드 방문은 ASML과 EUV 노광기 공급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입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약 10대의 EUV 장비를 도입했고 지난해 약 20여대를 추가 구매한 바 있습니다. TSMC는 현재 약 20여대의 EUV 장비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TSMC는 오는 2022년까지 60여대를 추가로 구매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의외였습니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이 해외 출장을 재개한다면 지난 2월 코로나19 확산세 때문에 기공식 행사를 취소했던 베트남 하노이 삼성전자 연구개발(R&D) 센터를 가장 먼저 찾을 것이란 예상이 나왔습니다. 최근 베트남 정부가 외교관과 기업인 등에 대해 자가격리를 면제해주는 패스트트랙(신속통로·입국절차 간소화)을 적용하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5세대 통신(5G) 사업에 특히 힘을 싣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도 후보지였습니다. 이 부회장의 일본 재계 인맥을 활용해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일본 내 사업 활로를 뚫는 게 급해보였기 때문입니다. 일본 역시 지난 8일부터 '기업인 특별입국절차'가 적용되는 나라였습니다.
삼성 파운드리 경쟁자 TSMC, 3분기 사상 최대 매출
이 때문에 네덜란드를 해외 출장 재개 첫 번째 나라로 선택한 배경에 궁금증이 나왔지만, 전날 삼성전자와 파운드리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대만의 TSMC 3분기 실적을 본 뒤 의문이 어느 정도 풀렸습니다.삼성전자가 전문가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3분기 실적을 공시한지 이틀 뒤 TSMC가 지난 9월 매출액이 1275억8500만대만달러(약 5조1289억원)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9%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 금액은 월 매출을 기준으로 사상 최대였던 지난 8월 약 1229억대만달러(약 4조9118억원)보다도 3.8% 많은 것입니다.
8~9월 연달아 사상 최대 매출을 경신한 TSMC는 올 3분기 실적도 신기록을 썼습니다. TSMC의 올 3분기 매출은 약 3564대만달러(약 14조243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1.6%, 지난 2분기보다는 14.7%나 늘었습니다.
업계에선 다른 반도체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요가 늘면서 수혜를 입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TSMC의 최대 고객사인 애플에 공급된 5나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출하량이 증가했고, 7나노 이하 고사양 반도체 제품 수요도 크게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됐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건 TSMC가 중국 화웨이와 거래를 끊고도 이 같은 성적을 냈다는 것입니다. 화웨이는 TSMC 전체 매출의 10%가량을 차지하는 그야말로 'VIP 고객사'입니다. 화웨이의 칩 위탁생산을 맡아왔던 TSMC는 미국 정부의 제재가 시작된 지난 5월 이후 화웨이로부터 신규 주문을 받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후 지난 7월에는 TSMC의 매출이 6월 대비 12.3% 줄어 화웨이 발(發) 타격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반면 삼성전자의 올 3분기 반도체 실적은 지난달 15일 미 정부의 추가 제재를 앞두고 반도체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화웨이의 긴급 주문이 몰리면서 선방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가 중론이었습니다.
향후 10년 '파운드리 패권' EUV에 달려
삼성전자의 '2030년 비메모리 반도체 1위' 선언의 첨병에는 '파운드리'가 있고, 최대 경쟁사는 TSMC입니다. 두 회사의 경쟁에 '키'를 쥐고 있는 기업이 바로 네덜란드의 ASML이라는 회사입니다. ASML은 삼성전자와 TSMC가 당분간 치열하게 경쟁하게 될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독점공급하는 업체입니다.반도체는 웨이퍼를 미세하게 깎을수록 품질이 올라가는데 EUV는 기존 불화아르곤(ArF) 대비 약 14배 파장이 짧아 미세한 회로를 그리는 데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얇은 붓을 사용하면 더 섬세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향후 10년 간 반도체 투자는 EUV 노광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얘기가 업계에서 나올 정도입니다.
EUV 노광기는 5나노 이하 미세한 회로패턴을 그려넣을 수 있는 유일한 장비로 대당 가격만 2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 대신 삼성으로 고객사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이 장비의 안정적 공급이 필수적이지만 최근 ASML과의 EUV 장비 구매 계약에서 고전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으로 미국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TSMC의 주문이 ASML에 몰린 탓입니다. ASML은 지난해 이 장비를 26대, 올해는 약 35대 생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이 장비를 공급받지 못하면 더 좋은 반도체를 공급받으려는 기업들은 주문을 삼성이 아닌 TSMC에 넣을 것이 불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재용 부회장의 네덜란드 방문은 ASML과 EUV 노광기 공급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입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약 10대의 EUV 장비를 도입했고 지난해 약 20여대를 추가 구매한 바 있습니다. TSMC는 현재 약 20여대의 EUV 장비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TSMC는 오는 2022년까지 60여대를 추가로 구매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