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집에도 발송된 투표용지…혼돈의 美 대선 [조재길의 지금 뉴욕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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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국경제신문 뉴욕 특파원이 거주하는 주택에 두툼한 투표 용지가 배송됐습니다. 다음달 3일 미국의 공식적인 대선 투표일을 앞두고, 투표권이 없는 외국인에게 우편투표 용지가 도착한 겁니다.
수신자는 과거 이 주택에 거주하던 미국 시민 M씨였습니다. 문제는 이 시민이 거주했던 때가 최소 3~4년 전이었다는 겁니다. 임차인이 2~3번 바뀌었는데도 미국 시민의 과거 거주지로 ‘공식 투표 용지’가 배송된 겁니다. 용지를 개봉하지 않고 관할 선거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자동 응답기가 받더군요. 기표 후 동봉된 편지를 발송하거나, 투표용지 거리 보관함(ballot drop box)에 넣거나, 여의치 않으면 대선 당일 현장 투표를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잘못 배송됐을 경우의 대처 방법은 없더군요. 실제 잘못 배송된 우편투표 용지가 무척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선 각 부처 간 개인정보를 활발하게 주고 받을 수 없어 더욱 그렇지요. 약 27년 간 미국 정치를 연구해 온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유권자들이 따로 주소지 변경 신고를 하지 않는 한 우편투표 용지가 과거 주소지로 발송된다”며 “유권자에 비해 선거관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일부 부정·오류 투표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트럼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후 9일만인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개 행사를 열었는데, 여기서도 같은 얘기를 반복했습니다. “우편투표 확대는 부정 선거의 증거”라고 공격했지요.
하루 앞선 9일엔 트위터에서 “오하이오주 유권자 5만여 명이 잘못된 부재자 투표 용지를 받은 게 확인됐다. 엉망 진창인 부정 선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오하이오주 선거관리 위원회 측은 “심각한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한 데 이어 “실수를 바로잡고 있다”고 했지요.
이런 가운데 펜실베이니아주 법원은 트럼프 선거 캠프가 제기한 우편투표 반대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부정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트럼프 캠프는 강력 반발하며 항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미 대선에서 우편투표 비중은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게 확실시 됩니다. 우편 방식으로 투표를 마친 미국 유권자는 이미 600만~700만 명에 달합니다. 2016년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10배 넘는 수치이죠.
현재 각종 여론 조사 결과에선 바이든이 트럼프를 큰 격차로 따돌리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업체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9일 기준으로 바이든이 트럼프를 평균 9.7%포인트로 앞섭니다. 각 여론 조사를 평균 내보니 그렇다는 겁니다.
물론 지지율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순 없습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 미국 주류 언론은 대부분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기 때문이죠. 2016년 대선 때도 대다수 언론이 막판까지 힐러리 승리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트럼프의 ‘압승’이었습니다.
최종 선거인단 수에서 트럼프는 전체 538명 중 56.5%(304명)를 확보했습니다. 51%만 확보해도 당선되는데 이보다 크게 앞섰던 겁니다.
미국의 독특한 선거인단 제도의 덕을 봤습니다. 실제 힐러리가 전국 득표율에선 48.2%로, 트럼프(46.1%)를 제쳤지만 당선인은 트럼프가 됐습니다.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다수의 미국 주류 언론은 헛발질을 한 셈이 됐지요.
미국 선거 제도는 우리나라와 아주 다릅니다. 각 당의 후보를 확정하는 경선부터 그렇지요. 각 당의 경선은 코커스(당원대회)와 프라이머리(예비선거)로 나뉩니다. 코커스는 당원만, 프라이머리는 당원과 일반인 모두 참여할 수 있지요. 트럼프는 재선에 도전하는 만큼 싱겁게 공화당 후보로 지명됐지만 바이든은 치열한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로 올라섰습니다. 중도 진보 성향인 바이든이 당내 목소리가 큰 급진 좌파의 암묵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만, 실제 대통령이 되면 당내 갈등이 커질 것이란 관측도 있습니다.
미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유권자 다수를 득표한 후보가 각 주(州)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승자 독식제’를 따른다는 겁니다. 선거인단 수가 많은 주를 집중 공략하는 게 관건인 셈입니다. 표심이 매번 흔들리는 경합주(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노스캐롤라이나, 애리조나, 위스콘신 등 6개)를 공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미 선거인단 수는 총 538명입니다. 미국의 주가 50개인데, 각 주마다 두 명의 상원의원(총 100명)이 있고, 여기에 하원의원이 총 435명(인구 비례)입니다. 워싱턴DC에 배정된 3명을 합치면 538명이 나오지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선거인단(270명)을 확보하면 내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를 할 수 있습니다.
선거인단 수가 가장 많은 주는 캘리포니아로 55명이고, 텍사스(38명), 뉴욕·플로리다(각 29명) 순입니다. 캘리포니아·뉴욕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표밭이고, 텍사스는 공화당이 잡고 있어 두 당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곳입니다. 문제는 플로리다와 같은 경합주이죠.
이번 선거에선 대통령 외에 상원의원의 3분의 1, 하원의원의 전부를 새로 뽑습니다. 정당 지형 역시 크게 바뀔 것이란 얘기입니다. 현재 상원(100석)은 공화당이 53석을 차지한 다수당이고, 하원(435석)은 민주당이 다수당(232석)입니다. 여론 조사 결과로는 상·하원 모두 민주당이 리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수 차례에 걸쳐 대선 불복 가능성을 내비친 건 다목적 포석입니다. 우선 정치적 안정을 원하는 유권자들에게 “내게 투표하지 않으면 선거일 이후에도 혼란이 지속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실제 투표 결과에서 지더라도, 불복할 명분을 쌓을 수도 있지요. 광범위한 우편투표 부정 때문이니 “인정할 수 없다”며 버티는 것이죠.
이 경우엔 트럼프가 불리하지 않습니다. 현직 대통령인데다, 선거 전 기준으로 상원 다수당(공화당)의 사실상 리더이기 때문이죠. 최종 판단을 맡을 연방대법원 역시 전체 9명 중 보수 인사를 5명으로 채운 상태입니다. 트럼프가 최근 새로 선임한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제외하고서도 그렇습니다.
만약 트럼프가 우편투표 부정을 이유로, 다음달 3일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최소한 내년 1월까지는 혼란이 지속될 전망입니다.
미국 수정헌법 12조에 따르면, 내년 1월 6일 제117대 의회가 개원해 투표 인증 작업을 해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을 뽑는 건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이긴 한데, 435명이 아니라 각 주가 한 표씩만 행사하도록 돼 있습니다. 50개 주 가운데 공화당 의원이 더 많은 주는 26개나 됩니다. 민주당(23개)보다 많지요. 의회나 법원 모두 트럼프엔 불리할 게 없는 것입니다.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9일 대통령 승계 문제를 규정한 수정헌법 25조에 근거해 의회의 대통령 해임 권한을 담은 법안을 발의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대통령이 직무불능 상태라고 판단될 경우 의회의 초당적 상설 위원회가 대통령을 직무에서 배제하자는 것이죠. 트럼프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데 따른 것이란 설명이지만 ‘선거 이후’를 겨냥한 조치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제이미 라스킨 민주당 하원의원은 “혼란의 시기에 헌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물론 공화당이 상원 다수인 상황에서, 이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지난 8일 미시간주에서 민주당 소속 여성 주지사(그레천 휘트머)를 납치하려는 무장단체 음모를 적발한 사건은 다가올 혼란의 서막일 수 있겠습니다. 무장단체 회원들은 약 200명의 남성을 모아 미시간주 랜싱의 주정부 청사를 급습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FBI는 이와 별도로 내전을 모의한 준군사조직 관련자들을 체포하기도 했지요.
뉴욕 증시의 움직임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월가 전문가들은 과거 트럼프 승리가 증시에 유리할 것으로 봤지만 지금은 달라졌기 때문이죠. 오히려 바이든 압승 예측이 나올 때마다 증시가 상승하고, 또 반깁니다.
“증세를 선호하는 바이든이 당선되더라도 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가 불복하지 못할 정도로 바이든이 압승해야 혼란이 종식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하고 있지요.
올해 미국 대선은 1789년 첫 선거(조지 워싱턴 대통령 당선) 이후 가장 혼란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정치 지형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겁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수신자는 과거 이 주택에 거주하던 미국 시민 M씨였습니다. 문제는 이 시민이 거주했던 때가 최소 3~4년 전이었다는 겁니다. 임차인이 2~3번 바뀌었는데도 미국 시민의 과거 거주지로 ‘공식 투표 용지’가 배송된 겁니다. 용지를 개봉하지 않고 관할 선거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자동 응답기가 받더군요. 기표 후 동봉된 편지를 발송하거나, 투표용지 거리 보관함(ballot drop box)에 넣거나, 여의치 않으면 대선 당일 현장 투표를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잘못 배송됐을 경우의 대처 방법은 없더군요. 실제 잘못 배송된 우편투표 용지가 무척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선 각 부처 간 개인정보를 활발하게 주고 받을 수 없어 더욱 그렇지요. 약 27년 간 미국 정치를 연구해 온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유권자들이 따로 주소지 변경 신고를 하지 않는 한 우편투표 용지가 과거 주소지로 발송된다”며 “유권자에 비해 선거관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일부 부정·오류 투표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투표 부정’ 물고 늘어지는 트럼프
트럼프는 오래 전부터 “우편투표는 부정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습니다. 우편투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뉘앙스도 풍겨 왔지요. 대선 결과가 나와도 트럼프가 불복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핵심 배경입니다.트럼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후 9일만인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개 행사를 열었는데, 여기서도 같은 얘기를 반복했습니다. “우편투표 확대는 부정 선거의 증거”라고 공격했지요.
하루 앞선 9일엔 트위터에서 “오하이오주 유권자 5만여 명이 잘못된 부재자 투표 용지를 받은 게 확인됐다. 엉망 진창인 부정 선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오하이오주 선거관리 위원회 측은 “심각한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한 데 이어 “실수를 바로잡고 있다”고 했지요.
이런 가운데 펜실베이니아주 법원은 트럼프 선거 캠프가 제기한 우편투표 반대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부정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트럼프 캠프는 강력 반발하며 항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우편투표에선 바이든 지지 압도적
트럼프가 우편투표에 줄기차게 반대하는 건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이 대거 우편투표에 나설 것이란 판단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직접 투표소에 들르기를 꺼려 하는 젊은 진보층은 우편투표를 적극 활용할 움직임입니다.올해 미 대선에서 우편투표 비중은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게 확실시 됩니다. 우편 방식으로 투표를 마친 미국 유권자는 이미 600만~700만 명에 달합니다. 2016년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10배 넘는 수치이죠.
현재 각종 여론 조사 결과에선 바이든이 트럼프를 큰 격차로 따돌리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업체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9일 기준으로 바이든이 트럼프를 평균 9.7%포인트로 앞섭니다. 각 여론 조사를 평균 내보니 그렇다는 겁니다.
물론 지지율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순 없습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 미국 주류 언론은 대부분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기 때문이죠. 2016년 대선 때도 대다수 언론이 막판까지 힐러리 승리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트럼프의 ‘압승’이었습니다.
최종 선거인단 수에서 트럼프는 전체 538명 중 56.5%(304명)를 확보했습니다. 51%만 확보해도 당선되는데 이보다 크게 앞섰던 겁니다.
미국의 독특한 선거인단 제도의 덕을 봤습니다. 실제 힐러리가 전국 득표율에선 48.2%로, 트럼프(46.1%)를 제쳤지만 당선인은 트럼프가 됐습니다.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다수의 미국 주류 언론은 헛발질을 한 셈이 됐지요.
‘Winner takes all’(승자독식) 선거 제도
이는 여론조사 결과가 대통령 당선 여부를 결정 짓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미국 선거 제도는 우리나라와 아주 다릅니다. 각 당의 후보를 확정하는 경선부터 그렇지요. 각 당의 경선은 코커스(당원대회)와 프라이머리(예비선거)로 나뉩니다. 코커스는 당원만, 프라이머리는 당원과 일반인 모두 참여할 수 있지요. 트럼프는 재선에 도전하는 만큼 싱겁게 공화당 후보로 지명됐지만 바이든은 치열한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로 올라섰습니다. 중도 진보 성향인 바이든이 당내 목소리가 큰 급진 좌파의 암묵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만, 실제 대통령이 되면 당내 갈등이 커질 것이란 관측도 있습니다.
미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유권자 다수를 득표한 후보가 각 주(州)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승자 독식제’를 따른다는 겁니다. 선거인단 수가 많은 주를 집중 공략하는 게 관건인 셈입니다. 표심이 매번 흔들리는 경합주(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노스캐롤라이나, 애리조나, 위스콘신 등 6개)를 공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미 선거인단 수는 총 538명입니다. 미국의 주가 50개인데, 각 주마다 두 명의 상원의원(총 100명)이 있고, 여기에 하원의원이 총 435명(인구 비례)입니다. 워싱턴DC에 배정된 3명을 합치면 538명이 나오지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선거인단(270명)을 확보하면 내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를 할 수 있습니다.
선거인단 수가 가장 많은 주는 캘리포니아로 55명이고, 텍사스(38명), 뉴욕·플로리다(각 29명) 순입니다. 캘리포니아·뉴욕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표밭이고, 텍사스는 공화당이 잡고 있어 두 당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곳입니다. 문제는 플로리다와 같은 경합주이죠.
이번 선거에선 대통령 외에 상원의원의 3분의 1, 하원의원의 전부를 새로 뽑습니다. 정당 지형 역시 크게 바뀔 것이란 얘기입니다. 현재 상원(100석)은 공화당이 53석을 차지한 다수당이고, 하원(435석)은 민주당이 다수당(232석)입니다. 여론 조사 결과로는 상·하원 모두 민주당이 리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트럼프 불복’
트럼프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럭비공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사실 치밀한 계산을 하고 움직인다는 쪽이 맞을 것 같습니다. 대단한 협상가이기도 하지요.트럼프가 수 차례에 걸쳐 대선 불복 가능성을 내비친 건 다목적 포석입니다. 우선 정치적 안정을 원하는 유권자들에게 “내게 투표하지 않으면 선거일 이후에도 혼란이 지속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실제 투표 결과에서 지더라도, 불복할 명분을 쌓을 수도 있지요. 광범위한 우편투표 부정 때문이니 “인정할 수 없다”며 버티는 것이죠.
이 경우엔 트럼프가 불리하지 않습니다. 현직 대통령인데다, 선거 전 기준으로 상원 다수당(공화당)의 사실상 리더이기 때문이죠. 최종 판단을 맡을 연방대법원 역시 전체 9명 중 보수 인사를 5명으로 채운 상태입니다. 트럼프가 최근 새로 선임한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제외하고서도 그렇습니다.
만약 트럼프가 우편투표 부정을 이유로, 다음달 3일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최소한 내년 1월까지는 혼란이 지속될 전망입니다.
미국 수정헌법 12조에 따르면, 내년 1월 6일 제117대 의회가 개원해 투표 인증 작업을 해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을 뽑는 건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이긴 한데, 435명이 아니라 각 주가 한 표씩만 행사하도록 돼 있습니다. 50개 주 가운데 공화당 의원이 더 많은 주는 26개나 됩니다. 민주당(23개)보다 많지요. 의회나 법원 모두 트럼프엔 불리할 게 없는 것입니다.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9일 대통령 승계 문제를 규정한 수정헌법 25조에 근거해 의회의 대통령 해임 권한을 담은 법안을 발의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대통령이 직무불능 상태라고 판단될 경우 의회의 초당적 상설 위원회가 대통령을 직무에서 배제하자는 것이죠. 트럼프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데 따른 것이란 설명이지만 ‘선거 이후’를 겨냥한 조치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제이미 라스킨 민주당 하원의원은 “혼란의 시기에 헌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물론 공화당이 상원 다수인 상황에서, 이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뉴욕 증시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가 지겠지만 결과적으로 트럼프가 4년 간 대통령으로 재임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세계 최강국의 정치적 혼란이 최소 수 개월 이어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파장입니다. 경제적 파국은 물론, 이 틈을 타 중국의 대만 침공과 같은 지정학적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미 연방수사국(FBI)이 지난 8일 미시간주에서 민주당 소속 여성 주지사(그레천 휘트머)를 납치하려는 무장단체 음모를 적발한 사건은 다가올 혼란의 서막일 수 있겠습니다. 무장단체 회원들은 약 200명의 남성을 모아 미시간주 랜싱의 주정부 청사를 급습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FBI는 이와 별도로 내전을 모의한 준군사조직 관련자들을 체포하기도 했지요.
뉴욕 증시의 움직임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월가 전문가들은 과거 트럼프 승리가 증시에 유리할 것으로 봤지만 지금은 달라졌기 때문이죠. 오히려 바이든 압승 예측이 나올 때마다 증시가 상승하고, 또 반깁니다.
“증세를 선호하는 바이든이 당선되더라도 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가 불복하지 못할 정도로 바이든이 압승해야 혼란이 종식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하고 있지요.
올해 미국 대선은 1789년 첫 선거(조지 워싱턴 대통령 당선) 이후 가장 혼란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정치 지형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겁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