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유 없이는 경제선진국 불가능하다
한국은 전후 신생독립국 중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의 위업을 달성한 국가로 칭송을 받아왔다. 경제발전과 자유민주화의 동시 달성이 그만큼 힘들다는 방증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임을 어깨를 펴고 당당히 자랑할 수 있었다. 이제 산업화, 민주화에 이어 선진화만 달성하면 후손들에게 안정되고 번영된 선진국을 물려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왔다.

그 기대가 ‘재인산성’ 논란을 낳은 개천절·한글날의 광화문 및 시청 일대 경찰의 ‘차벽’ 통제로 인해 산산조각이 난 모습이다. 때마침 가황 나훈아가 ‘대한민국 어게인’ 쇼에서 외친 “우리는 지금 너무 힘듭니다”라는 한마디 절규가 절절히 가슴에 와 닿는다. 외국의 비평가들이나 후세의 사가들이 이번 차벽을 중국 공산당의 톈안먼 사태와 비교하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그의 명저 《프랑스혁명의 성찰》(1790)에서 1789년 프랑스혁명은 군중에 의한 폭력시위로, 프랑스의 전통과 문명이 파괴되고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광기에 찬 폭력혁명의 결과 국정을 담당할 능력과 경륜을 갖추지 못한 당시 31세의 로베스피에르 자코뱅당 리더를 비롯한 혁명파들이 대거 국정을 담당하면서 5년간의 공포정치 동안 50만여 명이 투옥되고, 4만여 명이 사형당하고, 1만4000여 명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결과 왕정복고라는 반(反)혁명이 일어나는 등 프랑스는 제정과 공화정이 반복되면서 당시 명예혁명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을 확대해 가던 영국에 비해 자유민주주의가 후퇴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가 후퇴한 체제하에서는 일부만 자유를 누리게 되고 대부분 국민은 억압적이고 예속적인 상태로 추락, 개인과 기업의 경제할 수 있는 동기가 저하돼 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프랑스는 공포정치 동안 경제가 극도로 추락해 아사자가 속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 명예혁명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을 확대해 가던 영국은 개인과 기업의 창의적 경제활동의 동기가 고양돼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1850년대에는 빅토리아 대호황기를 맞아 ‘팍스브리태니카’ 시대를 열었다. 1900년대 들어서는 영국의 전통을 이어받은 미국이 자유민주주의와 그 바탕 위에서 개인과 기업의 창의적인 활동으로 시장경제를 발흥시켜 ‘팍스아메리카나’ 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세계 경제발전사는 자유민주주의가 없이는 경제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대런 애쓰모글루 미 MIT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교수가 공저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는 30여 명의 연구진이 15년간 동서고금의 경제사를 연구한 결과를 정리한 위대한 연구업적이다. 국가가 생산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경제활동의 자유, 사유재산권 보장, 법치가 보장되는 제도가 중요한데 이를 ‘포용적 경제제도’라고 했다. 한마디로 시장경제제도다. 포용적 경제제도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다원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자유민주적인 ‘포용적 정치제도’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서고금의 역사는 한결같이 개인과 기업이 열심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시장경제제도와 그 시장경제제도를 가능하게 하는 다원적인 자유민주주의가 발달하지 않고는 국민이 잘살 수 있는 선진국 달성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천절·한글날의 차벽은 재발해서는 안 될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점에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전후 신생독립국 중에 어렵게 산업화, 민주화를 달성하고 선진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이 여기에서 주저앉게 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