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소득 불평등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의 공식 통계인 ‘가계동향조사’를 사실상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통계의 표본집단을 바꾸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저소득층 비중을 줄이고 고소득층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통계 원자료를 ‘마사지’했다는 주장이다. 국가 통계의 신뢰성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정부 입맛에 맞춰 데이터 표본 교체

"통계청, 소득불평등 지표 개선하려고 '가계동향조사' 조작했다"
통계청장 출신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12일 통계청에서 받은 ‘가계동향조사 분기 상세 자료’를 분석한 ‘2020 통계청 국정감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유 의원은 이 보고서에서 통계청이 2019년 1분기부터 표본집단과 조사 방식을 바꾼 새로운 가계동향조사를 발표하면서 정부 입맛에 맞는 결과를 내기 위해 자료를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이 통계청에서 받은 ‘2019년 1분기 전국 2인 이상 소득분포 비교’에 따르면 ‘200만원 미만’ 저소득층 비중은 과거 통계 방식에선 18.2%였지만 바뀐 통계에선 14.8%로 줄었다. 통계 표본이 바뀌면서 저소득층 비중이 3.4%포인트 감소한 것이다. ‘200만원 이상 400만원 미만’ 비중도 28%에서 27.2%로 0.8%포인트 줄었다. 반대로 1000만원 이상 고소득층 비중은 6.7%에서 8.4%로 1.7%포인트 증가했다. 400만~600만원 미만과 600만~1000만원 미만 비중도 각각 1.8%포인트, 0.7%포인트 늘어났다.

유 의원은 “당초 통계청은 표본집단 가운데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답변 비율이 점진적으로 하락하는 문제를 고치기 위해 표본집단을 늘리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며 “하지만 130억원 들여 바꾼 표본집단을 보면 통계의 신뢰성이 오히려 하락했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이 통계청에서 받은 ‘2018년 8월 제3차 가계동향조사 통합작성방안 회의자료’에 따르면 “(새로운 가계동향조사 통계는) 저소득과 고소득 가구에 대한 포착률(반영률)을 높여 소득분배 지표의 정확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고 개편 취지를 설명했다.

소득분포 비교 대상을 ‘전국 1인 이상’까지 확대해 보면 통계 왜곡 현상은 더 심해진다. 과거 통계에서 ‘200만원 미만’ 저소득층 비중은 32.89%에 달했지만 바뀐 통계에선 25.84%로 떨어졌다. 무려 7.05%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200만원 미만을 제외한 나머지 소득분포 비중은 모두 증가했다. 이에 대해 통계청은 “특정 가구의 소득을 미리 알기 어렵기 때문에 고소득층 가구를 의도적으로 표본에 많이 포함시킬 수 없다”고 반박했다.

소득분배 지표, 조사 시작 후 역대 최악

소득분포 비중을 바꾼 결과 가계동향조사의 5분위 배율이 종전보다 개선됐다는 게 유 의원 측 주장이다. 5분위 배율은 가계소득 상위 20% 소득이 하위 20% 소득의 몇 배인지를 알려주는 통계 지표다. 배수가 낮을수록 소득 불평등이 개선됐다는 의미다.

유 의원에 따르면 과거 방식으로 계산한 2020년 1분기 5분위 배율은 6.08배로 추산됐다. 5분위 배율이 6배를 웃돈 것은 2003년 전국 단위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1분기 다음으로 5분위 배율이 나빴던 시점은 2018년 1분기(5.95배)다. 당시 이런 통계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에 반한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통계청이 지난해 가계동향조사 개편 후 4분기까지 과거 방식과 현재 방식의 통계를 함께 발표하다가 돌연 올 1분기부터 바뀐 통계 지표만 공개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목됐다. 유 의원은 “소득 불평등 지표가 악화하고 있는 현실을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거 방식의 통계를 공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통계청은 이에 대해 “과거 방식과 새로운 방식은 상이한 표본체계와 조사 방식 때문에 비교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좌동욱/서민준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