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 길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면 상품과 자본의 이동까지 제한되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퇴조 움직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효율성(기업 차원에서는 이윤 극대화)’을 중시하는 세계화에서 안정성과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수출에서 내수로, 아웃소싱에서 인소싱으로
점점 안으로 들어가는 세계 흐름
자급자족 성향은 더 강해지는 추세다. 가뜩이나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범세계주의’보다 ‘보호주의’가 힘을 얻어가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수출’보다 ‘내수’, ‘오프쇼어링’ 보다 ‘리쇼어링’, ‘아웃소싱’보다 ‘인소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극우주의 세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
자급자족 성향이 중시되는 과정에서 앞으로 더 주목되는 변화는 각국이 세계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이다. 미국이 주도하지만 일본, 유럽 등 모든 국가가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종전에는 볼 수 없던 현상이다. 세계 공급망의 중심지가 될수록 자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국민의 경제생활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가’는 세계 공급망의 개념을 따져보면 그 답이 나온다. 세계 공급망이란 ‘기업간 무역’과 ‘기업 내 무역’으로 대변되는 국제 분업체계를 말한다. 이 개념에 충실한 개편안은 종전 세계 공급망의 중심국 기업 간 거래를 차단하고 본국으로 환류되는 기업 간 거래를 더 촉진하면 된다.
가장 앞서가는 미국의 세계 공급망 재편 구상인 ‘경제 협력 네트워크(EPN)’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런 내용이 그대로 드러난다. 세계화 시대에 공급망 중심국인 중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화웨이 등 핵심 기업과 미국 기업과의 모든 거래를 차단했다. 삼성전자 등 제3자 기업을 통한 거래, 즉 세컨더리 보이콧도 병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죽이기 전략’이다. 미국의 무제한 달러화 공급, 트리핀 딜레마는
어떻게 극복하나
세계화가 퇴조됨에 따라 기축통화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미국 중앙은행(Fed)은 1913년 설립 이래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정크본드 등 매입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제한 달러화를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달러화 공급이 많을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트리핀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리핀 딜레마란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달러화를 공급해야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달러 가치가 떨어져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달러 가치가 떨어져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의 주장이다.
Fed가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하자마자 달러 가치가 폭락할 것이라는 의견이 곧바로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3’대에서 ‘92∼93’대로 급락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자인 레이 달리오는 달러화가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축통화인 달러화 위상이 흔들림에 따라 중국을 비롯한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했던 과다 달러화 보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탈달러화 움직임이 빨라지는 추세다.
주력산업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은 ‘알파 라이징 업종’의 부상이다. ‘알파 라이징 업종’이란 현존하는 기업 이외라는 관점에서 ‘알파(α)’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 떠오른다는 의미에서 ‘라이징(rising)’이 붙은 용어다. 클라우드, 온디멘드. 리모트, 온라인 스트리밍, 네트워크 5G, 인공지능 등의 머리글자를 딴 ‘CORONA’와 바이오 업종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바이오와 정보기술(IT) 업종 간 융합 추세도 급진전되고 있다. 학자마다 코로나 이후 앞날 예측 달라
미국경제연구소(NBER)의 경기순환 국면을 판단하는 가장 종합적인 지표인 국민소득 통계가 193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즈네츠에 의해 개발된 이래 코로나19 사태처럼 경기 앞날을 보는 시각이 엇갈리는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I’ 자형, ‘L’ 자형, ‘W’ 자형, ‘U’ 자형, ‘V’ 자형에 이어 ‘나이키형’ 까지, 나올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예측 시각이 나왔다.
코로나19가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 세계 증시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상황에서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I’ 자형의 극단적인 비관론을 제시했다. 반면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은 코로나 백신 개발이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조기에 회복할 것이라는 ‘V’ 자형으로 반박했다.
세계적인 석학 간에 경기 앞날을 보는 시각이 엇갈리게 만든 것은 코로나19가 갖고 있는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코로나19는 발병 원인과 시기, 진행 방향, 그리고 치료제와 백신 개발과 시기 등 그 어느 하나 확실하지 않은 ‘아무것도 모 르는(N K;Nobody Knows)’ 리스크다. 하이먼 민스키 이론에서는 NK 리스크를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주체가 대응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보고 있다.
루비니 교수를 비롯한 비관론자가 결정적으로 실수한 것은 NK 리스크는 위험요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 주가는 지난 3월 중순 이후 50% 이상 올랐다. 세계 증시를 주도했던 테슬라와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의 주가는 PER(주가수익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 등 전통적인 주가평가지표로는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경기는 경제활동 재개 시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다르다. 가장 빨리 지난 4월 들어서자마자 재개한 중국 경제는 올해 1분기에 -6.8% 수준까지 추락한 이후 2분기에는 3.2%로 수직 반등했다. 지속 여부는 3분기 이후 성장률이 어떻게 나오느냐를 지켜봐야겠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놀라워했을 만큼 ‘V’ 자형 회복이다.
반면 경제활동 재개가 가장 늦었던 미국 경제는 올해 1분기 -5% 역성장한 데 이어 이달 말에 발표될 2분기 성장률은 -32.8%로 떨어졌다. 2분기 성장률을 놓고 본다면 대공황 때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한국 경제도 2분기 성장률이 -3.3%로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중요한 것은 3분기 이후다. 지난 3월 1차 논쟁 때와 마찬가지로 2차 논쟁 때도 두 가지 시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올해 3분기에는 기저 효과 등으로 잠시 회복세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된다는 ‘W’ 자형과 2분기를 저점으로 회복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V’ 혹은 ‘U’ 자형 시각이다.
1차 논쟁 때와 다른 것은 극단적인 비관론인 ‘I’ 자형과 ‘L’ 자형 시각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1차 대감염으로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등이 일상화되면서 2차 대감염이 발생하더라도 1차 때만큼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코로나 백신 개발 시기도 1차 대감염 때보다 가까이 다가왔다.
경제 재봉쇄도 쉽지 않다. 최악의 경우 2차 대감염에 따라 경제활동이 재봉쇄된다 하더라도 각국 중앙은행이 코로나19 사태가 극복될 때까지 모든 것을 다 풀어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1차 대감염 때보다 완충능력이 확보된 상태다. 1차 대감염 이후 주가가 크게 오른 것에 따른 ‘자산 효과’도 기대돼 ‘W’ 자형의 두 번째 저점은 첫번째 저점보다 높게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어렵더
라도 세계 경기는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해나간다는 의미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전문위원 겸 논설위원. 30년 동안
국제경제 분야만 판 전문가다. 한국은행을 거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창립 멤버로 국제 세미나에서
세계적 예측 기관과 경제 석학, 이코노미스트들과
교류했다. 대우경제연구소에서 세계적인 예측 기관인
와튼계량경제연구소(WEFA) 정회원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