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세계만큼 냉정한 곳도 없다. 치열한 승부와 기록경쟁으로 순위를 매긴다. 얼마 전 우연히 스페인에서 개최된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대회 뉴스를 보았다. 내내 3위로 달리던 영국 선수가 결승점을 몇 미터 앞두고 실수로 코스를 벗어나자 스페인 선수가 이를 추월해 가다 결승선 앞에 멈춰 섰다. 눈앞의 동메달을 양보한 것이다. 결국 4위가 된 선수는 멈춰선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앞서 달리던 선수가 동메달을 받을 자격이 있었고, 그게 더 정의롭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의로운 패배’를 선택하고 쿨하게 현장을 떠나는 모습에 수많은 찬사와 박수가 쏟아졌다.

기업에서도 정의로운 패배가 가능할까? 자산이나 이익 규모, 월간활성이용자(MAU), 트래픽 수와 같은 구체적인 결과물로 순위가 결정되는 경쟁 환경에서 기업들은 저마다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궤도 이탈이나 과잉 포장을 불러올 수 있다.

최근 직원들과 ‘성과’를 주제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목표를 초과해서 달성하는 것”이 성과라는 의견도 있었고, “핵심성과지표(KPI: key performance indicator) 평가에서 1등을 차지하는 것이 성과”라고 말한 직원도 있었다. 도전적인 자세는 나무랄 데 없지만, 리더로서 많은 고민이 떠올랐다. ‘진정한 성과’란 무엇일까? 결과만큼 과정에도 집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롭고, 최선을 다해 거둔 성과의 가치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의미다.

‘나의 이익에만 급급하지 않고 고객과 사회에 정당한 성과인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과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예스(Yes)!’라고 답할 수 있다면, 성과의 크기를 떠나 인정받아야 한다. 책임을 다한 끝에 거두는 진정한 성과만이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단숨에 바꿀 순 없더라도 조금씩 만들어가야 하는 ‘우보만리(牛步萬里)’의 길이다.

앞선 이야기는 양보한 선수에게 명예 3위와 동메달에 준하는 상금 수여라는 훈훈한 결말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보다 큰 영광은 양보받은 선수의 진심 어린 감사와 영상을 본 수많은 사람의 감동 댓글이었을 것이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에 ‘착하다’란 형용사를 붙이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 ‘착한 가게’ ‘착한 투자’ ‘착한 소비’와 같이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결과를 넘어 과정의 가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대답할 차례다. 최선의 노력을 통한 정당한 가치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때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착한 기업’의 책임이자 ‘정의로운 패배’도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한 승리’로 함께 가는 길일 것이다.